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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원통함을 없게 하라!"역사 속 조선시대 법의학을 살펴보다
  • 김유민 기자
  • 승인 2006.09.11 00: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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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많은 마니아층을 양산하고 종영됐던 『추리다큐 별순검(아래 별순검)』이란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요즘 대학생들에게 ‘법의학’을 묻는다면 보통 『CSI 과학수사대』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법의학은 조선시대에도 분명 존재했던 학문이다. 『별순검』은 바로 당시의 법의학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조선 법의학 존재 자체에 대해 놀랐다면 이젠 그 과학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조선은 지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당대 최고의 과학적 수사 기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과학적 수사를 이끌었던 교본으로 검시관들의 지침서인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이 있다. 원래의 『무원록』이란 중국 원나라의 책이었지만, 우리나라로 건너와 현실에 맞는 수사법을 첨가해 『증수무원록』으로 개편됐다.

『증수무원록』에 있는 내용 중 대표적으로 조선의 과학적 수사력을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은비녀’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은’은 독의 유무를 따질 때 사용된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임금의 독살을 막기 위해 은식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김호 교수는 “반드시 100% 순은만을 사용해 정교한 수사가 가능했고, 만들어진 은비녀는 관청의 감독 하에 봉해 두었다가 검시에만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 사건 속 활용되는 은비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다산 정약용의 저서 「흠흠신서」가운데 나오는, 조선시대 전라도 장수현에 사는 최일찬의 전 아내 이씨가 음독자살한 사건으로 그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수사관은 조각수(쥐엄나무를 끓여서 우려낸 물)로 은비녀를 깨끗이 씻은 후 죽은 사람의 입안과 목구멍에 집어넣고 종이로 밀봉했다가 얼마 후 빼서 청흑색으로 변했는지를 확인한다. 그것을 다시 조각수로 씻어내 색깔이 지워지지 않으면 독으로 죽은 것이다. 만약 독기가 없다면 은비녀가 선명하게 흰색이 된다. 이 밖에도 은비녀를 항문에 넣어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다.

은비녀가 도구를 이용해 검시하는 대표적인 방법이었다면, 조선시대 검시의 핵심으로 꼽히는 다른 방법으로는 시체의 얼굴색을 관찰하는 것이 있었다. 이 방법은 사체를 해부해 사인을 분석하는 서양의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우리만의 검시법이었다. 그 당시에는 안색의 종류에 따라 죽음의 원인을 달리 파악했는데, 적색은 구타나 목을 맨 상처, 푸른색은 독살, 흰색은 동사, 황색은 병사로 구분했다.

이렇게 시체의 얼굴색으로 사인을 판별하다보니, 살인을 저지른 경우 이 점을 반대로 이용해 시체의 색을 바꾸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흉기로 살해한 경우 상처가 푸르거나 붉은색이 나타나야 하는데, 버드나무 껍질을 상처 부위에 덮어두면 상흔 안이 짓무르고 부패해 검은색으로 변한다. 이런 방법으로 구타 흔적을 위조할 수 있었다”며 “반드시 손으로 상처부위를 만져봐 부어오르지 않고 단단하지 않으면 위장의 흔적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사건을 다루는 치밀함만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법의학의 높은 수준을 가늠케 한다.

수백년이란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법의학적 기술은 실로 감탄할 만 하다. 조선의 법의학을 이토록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든 원동력은 『무원록』이란 한 권의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원(無寃), 그것이 의미하는대로 백성들의 죽음에 있어서 ‘원통함을 없게 하라’는 정의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김유민 기자  kym20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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