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상담실을 진단하다

지난 여름방학, 중앙도서관(아래 중도) 게시판에 한 장의 사과문이 붙었다. 중도 열람실에서 엎드려 자던 여학생의 신체를 만지는 행위를 하던 남학우가 자신의 행동을 성희롱이라 인정하고 사과문을 게시한 것. 이 학생은 공개 사과를 하는 것 외에도 도서관 출입제한 1년, 사회복지기관에서의 40시간 봉사와 같은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은 피해자로부터 신고를 받은 성폭력 상담실(아래 상담실)이 진위를 파악하고 가해자에게 징계를 한 사례 중 하나다.

학관 2층에 위치하고 있는 상담실은 지난 2001년에 설립됐다. 여학생처 소속인 이곳은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거나 접수된 사건을 처리하는 일을 한다. 총여학생회(아래 총여)와 반(反)성폭력운동 등과 같이 성폭력 근절 활동을 함께 기획하고 있으며 학내 양성 평등 문화 정착에 앞장서는 ‘양성 평등 서포터즈 활동’,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성(姓)인지 워크샵’ 등의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또한 매 학기 성폭력 사건 해결과 관련된 인사들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하는 것도 상담실의 주된 활동이다.

상담실의 주요 역할인 성폭력 상담은 전화나 메일로 이뤄진다. 상담실에 전화나 메일로 신고가 들어오면 상담실 측에서는 사실 확인에 들어간다.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재에 들어가고 대개 가해자가 공개사과를 하거나 사회봉사를 하도록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우리대학교 상담실 김이정민 상담원은 “성폭력 상담이나 사건 신고는 매 학기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며 “이는 성 관련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기보다는 과거엔 숨기려고 노력하던 사건들을 공론화시킬 수 있게 됐다는 인식의 변화라고 봐야 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에 성폭력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홍유리씨(컴퓨터·04)의 말처럼 아직까지도 상담실의 존재 및 역할은 일반 학생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상담실이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고유리씨(법학·06)의 말처럼 상담실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우리대학교 홈페이지(http://www.yonsei.ac.kr)의 캠퍼스 지도에도 위치가 나타나지 않아 성폭력 문제에 관한 상담을 받고 싶은 학생들이 상담실의 위치를 몰라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학내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상담실의 존재를 모르는 현실에서 상담실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홍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캠퍼스 지도에 상담실의 위치를 명시하는 것은 물론, 학사포탈시스템(http://portal.yonsei.ac.kr)에만 연결된 상담실 홈페이지(http://www.yonsei.ac.kr/~helper)를 우리대학교 홈페이지에도 연결해, 학내 구성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상담실의 역할을 알리는 안내책자를 배포하거나 학내 유동인구가 많은 학생회관과 중도 앞 같은 곳에 안내소를 설치해 상담실의 존재를 알리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올바른 양성 평등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성폭력 상담소의 여명 활동가에게 물었다.

Q. 학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학교 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A. 학교에서 사건을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추후 예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내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과·반·동아리에 함께 속한 학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성폭력 사건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과문만 게재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과방 출입을 금하는 등의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공간적 분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피해자가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Q. 학내 양성 평등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A.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 문화가 정착돼 온 한국사회에서 남학생들은 ‘사랑’과 ‘성폭력’ 간의 정의를 모호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남학생과 여학생 간 성폭력에 대한 정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 성문화가 아닌 ‘인간 중심적 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남학생과 여학생 간의 성담론이 필요하다. 성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어떤 부분이 성폭력인지 서로의 정의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내 구성원들에게 상담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적극적 홍보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그 가운데, 여 활동가의 말처럼 앞으로 우리 대학 성폭력 상담실은 성폭력의 정의에 관한 남녀, 두 성 간의 토론 문화를 조성하는 역할 역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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