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사건을 재조명하다

‘8월 14일 낮 2시경 경찰의 강경진압 방침에도 불구, 남북해외청년학생연석회의가 과학관 11호에서 진행되자 경찰은 교내에 공권력을 투입, 각종 시위용품과 관련자료 등을 수거하고 학생들을 연행했다.’


이는 10년 전인 지난 1996년 9월 2일자 「연세춘추」의 연세대 사건(아래 연대사건)에 대한 기사의 일부분이다. 연대사건은 지난 1996년 8월에 범민족연합남측본부(아래 범민련)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아래 한총련)이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세대에서 7차 범민족대회와 6차 통일대축전을 강행함으로써 벌어진 정부 대 학생간의 충돌을 말한다.


당시 정부는 이 행사를 ‘친북적 성향의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원천봉쇄하기로 결정했다. 한총련이 북측으로 대표를 파견한 것과 △북-미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방안 등 범민련과 한총련의 주장이 친북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12일부터 우리대학교에서는 정부의 행사원천봉쇄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됐고 14일 낮에 일어난 전경의 학내 침투로 충돌은 격렬해졌다. 15일 한총련은 해산을 약속하며 전경의 철수를 요구했지만 전경은 16~19일까지 학생들이 피신해있는 과학관과 종합관을 포위했다. 9일에 걸친 신촌지역 일대 전경과 학생들의 충돌 과정에서 학생 1명 뇌사, 전경 1명 사망, 전경과 학생 2천여명 중경상, 시위대 5천여명이 연행됐으며 우리대학교는 1백 50억원 가량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80년대 학생운동에 비해 연대사건에 대한 여론은 냉소적이었다. 이는 당시 기성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사건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인터뷰한 내용과 다르게 보도됐다”며 “기사에서 여학생 성폭행, 단전단수, 음식물과 의료품 반입 통제 등 학생들의 피해사항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즉 언론들은 전경의 폭력진압을 언급하지 않은 채 학생들의 시위를 조명함으로써 학생들을 폭도로 매도했다는 것이다.


기성언론의 편파성 보도 외에도 한총련의 비현실적 주장은 부정적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이 주장했던 북-미 평화협정조약에 대해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미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지만 “미국과 북한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현실과 괴리된 급진적 주장을 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총련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냉소적 여론 조성에 한몫을 했다. 지난 1996~2005년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낸 민경우씨는 “당시 한총련은 학생들의 관심인 대학등록금인상 등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기존의 문제점인 학생들과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10년전에 일어난 연대사건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범청학련 남측지부 의장 윤기진씨는 “남과 북, 해외 동포 3자연대를 통한 자주적통일 등 당시 주장했던 내용이 대중화가 됐고, 6.15 공동선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연대사건의 의의를 밝혔다. 그러나 조박사는 “이들의 주장이 영향력 있었기보다는 김대중 정부 자체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고 반박했다. 시민사회 내에서 연방제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 실제적인 영향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조박사는 “3자연대는 바람직한 형태지만 한총련이 주장한 3자연대는 북한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3자연대의 대표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996년 8월 연세대에 있었던 사건을 ‘연세대항쟁’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세대사태’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이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친북적 학생들의 난동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통일에 대한 담론의 장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명칭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대사건이 모두에게 항쟁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대중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의 학생운동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사회를 위한 운동의 실현은 한사람의 열걸음이 아닌 열사람의 한걸음으로 이뤄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 조근주 기자  positive-thinking@yonsei.ac.kr

/사진 윤영필 기자 holinna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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