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관련 드라마들. 그 허구와 사실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 고구려 관련 드라마들. 그 허구와 사실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안방극장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고구려 열풍.’ 드라마의 허구성과 역사가 갖는 실제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구성이 시청자들을 의아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텔레비전 앞에 잡아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제작된 것이기에 『주몽』, 『연개소문』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그렇다면 이들은 얼마나 사실에 입각한 극의 전개를 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 『주몽』에서 부여와 가장 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는 뛰어난 제련술을 갖고 있다. 그들은 ‘초강법’이라는 한층 높은 강도의 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힘의 우위를 지키고 있으며, 부여는 계속 그 격차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당시 부여와 한나라는 제련술에 있어서 그토록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고구려연구재단 김현숙 연구위원은 “자신과 말의 몸을 모두 철갑으로 덮고 있는 한나라 ‘철갑기병’은 사실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며 당시의 부여와 한나라의 제련술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철갑기병으로 유명한 것은 한나라가 아닌 고구려였다. 이러한 사실은 4세기 중후반의 안악 3호분과 5세기 초반의 약수리고분에서 발견되는 벽화에서 병사는 물론 말까지 온몸에 철갑을 두른 기병들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4세기로 가면 단련철(때려서 강하게 만든 철)을 사용하는 고구려가 철의 강도 면에서 중국의 것을 능가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고구려가 부여에 그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볼 때 부여와 한나라의 제련술 차이가 컸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몽』과 맥을 같이하며 이른바 ‘고구려 열풍’의 바통을 이어 받은 『연개소문』은 시작부터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의 ‘안시성 전투’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방송 후, 연개소문이 수도인 평양성을 버려두고 변방의 안시성에서 싸움을 이끌었다는 설정에 많은 의문이 개진됐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개소문은 안시성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연개소문이 평양성에 있었는지 아니면 안시성을 방어하는 성주를 도와주기 위해 안시성 쪽으로 가고 있었는지는 사료의 한계상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안시성 성주와 연개소문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연개소문은 지방을 통제하려고 했고 그에 대해 안시성 성주가 반발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창시절에 국사공부에 꽤나 흥미를 붙였던 독자라면 흔히 안시성 전투를 이끈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만춘은 조선시기 역사책에 나오는 이름일 뿐 그 실존성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고구려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양만춘’ 대신 ‘안시성 성주’라고만 지칭한다. 이와 같이 드라마의 허구성에 관한 또다른 예로 연개소문과 함께 전투를 이끄는 조직으로 나오는 ‘조의’가 있다. 고구려에서 조의는 관등일 뿐 따로 조직된 군대는 아니었다. 다만 그 때는 문·무관의 구분이 없었기에 조의가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가능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드라마에서는 극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또는 더 큰 흥미를 끌기 위해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의 특성상 그 정도의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드라마를 단순히 사실로 믿어버리는 시청자의 태도에 있다.

 최근 고구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은 분명히 고구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소외됐던 고구려 역사가 우리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객관적 지식이 배제된 상태의 관심은 다만 ‘유행’에만 머무를 수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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