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이여. 당신의 지리했던 고등학교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꽃미남 탤런트 이동욱의 대본튜닝이다. 원래는 '마이걸'인데, 어쩜 이렇게 바꿀 수 있단 말이뇨. 한 때 이 대본튜닝은 엄청난 조횟수를 기록하며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렸다는데.

머리 좀 잘라라, 너 왜 창문 쳐다보냐, 교실 ‘꼬라지’가 이게 뭐냐... 우리네 담임선생님들의 ‘갈굼’에 당신은 짜증을 내고 있다. 그 짜증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당신의 방법은 매점을 제외하면 ‘교과서 튜닝’이었다. 바로 당신이 고등학교 때 했던 낙서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맙소사, 국사는 ‘굶자’가 되다니...
이런 낙서들, 사람들이 그저 피식 웃고 마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만나볼 낙서는 약간 다르다. 아니, 이제는 절대  낙서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다. 바로 ‘그래피티’다.
그래피티라는 단어가 약간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원은 의외로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는 이집트 벽화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들, 혹은 울주 반구대 벽화 등이 바로 그래피티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런 그림들에서 출발해 팝아트의 물결을 타고 현대의 그래피티가 등장한다.
그래피티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거리예술로, 사회 반항적 메시지를 담은 미술로, 혹은 그냥 낙서로 보는 견해까지. 그래피티가 예술이라는 말에 최근 우리대학교의 한 노교수는 ‘하찮은 것들,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래?’라고 하셨다지만, 분명 그래피티는 예술이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감탄사가 ‘낼롬’ 튀어나올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그래피티가 등장한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 흑인들과 푸에르토리코 인들이 거리와 벽에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그렸다. 그 문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반항, 상상, 도전’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그들은 ‘망나니’였고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적이었으며, 뉴욕 시장님이 앓는 두통의 이유였다.
그들이 햇빛 속으로 나오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람, 바스키야(Jean Michel Basquiat, 1960~1988) 덕분이라고 한다. 별명이 ‘검은 피카소’였다니 그의 생애가 짐작 갈 법도하다. (세상에, 피카소가 식당에 가서 돈 대신 그림을 그려주고 나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따라하다 뺨도 맞았단다) 그는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뉴욕지하철의 벽 위에 칠함으로서 쓰레기더미인 뉴욕지하철을 ‘구원’했고, 낙서 취급받던 그래피티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는다.

얼굴을 잘 보라. 일반적으로 '삐딱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는 '요절한 천재', '검은 피카소' 등의 별명도 갖고 있다. 또 한 사람 더 있다. 바스키야와 동시대 인물인 키스 헤링(Keith Hering, 1959~1990). 그는 인종차별, 에이즈 퇴치, 반전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내 그래피티도 단순한 반항의식을 넘어선 사회참여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그래피티는 꽤 유명해졌다. 작가들도 많이 활동하고, 각종 까페나 홍대 앞 클럽, 이태원 등지의 가게들이 그래피티로 장식을 하고 있다. 또한 다른 예술분야와의 교류도 활발하다. 음악 앨범 자켓에도 그래피티 기법이 사용되고, 뮤직비디오의 배경에도 종종 등장한다. 서태지의 Live Wire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그래피티란다. 이렇듯 그래피티는 그래피티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 쪽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자료사진 http://graffiti.or.kr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래피티예술가, NINBOLT씨(아래 NIN님, 본명 지성진)를 그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여기는 총신대 입구. 취재원인 NIN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확히 8분 지났다. 왜 여기는 그 많은 별다방도 없는 거냐며 혼자 툴툴거리는 찰나, NIN님은 묘한 표정을 짓고 등장한다. 지하철입구에서 연습실이라는 곳은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해서 이동 중에 인터뷰를 시도했다.

“정식 연습실이 아니에요. 그냥 동네에 판자를 세우고 거기다가 이것저것 그리는 건데, 저만 그리는 게 아니라 그래피티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거기에 마구 그려요.”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NIN님의 지인을 만났다. 울산에서 그래피티를 배우려고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려는데, 지하철역을 못 찾겠다고 울상을 짓는다. 세상에 울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울산뿐만 아니라, 정말 전국에서 다 올라와요.” 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NIN님. 골목길을 올라가자 정말 ‘판자’가 등장한다. 보통 가정집 앞을 ‘쌩뚱스럽게’ 차지한 판자. 정말 생각보다 작다. 판자 옆의 조그만 골목에도 그림들이 있다. 조용한 동네 안에 복잡한 비주얼들이 밀려온다.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동네 분들에게  많이 혼났어요. 그런데 여기가 이제 햇수로 8년정도 됐거든요. 이제 많이 누그러지셨어요. 또 그래피티 덕분에 방송출연도 많이 하고 유명해지니까 뭐라고 안하시더라고요.”
“그래피티는 락카로만 그리지만, 소재 자체는 무궁무진해요. 글씨 하나 쓰는 방법도 여러 가지고요. 와일드, 2D, 3D, 올드스쿨, 버블...”

NIN님, 시범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쓱싹쓱싹, 아니 슈우우욱 하면서 스프레이를 뿌린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NIN님. 거의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해체해버리는 와일드, 곡선으로 글자를 말아내면 올드스쿨이고, 입체감을 주면 2D, 거기다가 명암까지 주면 3D...직접 기자도 따라해 본다. 확실히 작업이 건강에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락카 냄새를 조금 맡았을 뿐인데 머리가 어지럽다. 도대체 이 양반은 이 냄새가운데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두어번 정도 실려간 것 같아요. 일하다가.” 그런 심각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 평소에는 물론 방독면을 쓰고 작업을 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헤어질 시간에 자신이 그린 ‘착시 그래피티’를 보여준다. 기자는 또 좋다고 올라가 봤다. '착시'그래피티다. 무엇인가에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고? 당신은 '낚였다!' 기자는 분명 널판지 하나에 올라가 있을 뿐인 것을.

헤어질 시간이다. 그런데 왜 아무런 포부 같은 것도 말하지 않을까. 왠지 모르겠지만, 기자도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모든 것은 입이 아닌 벽에서, 락카에서, 손 끝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였을까. 왜 그래피티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도, 그냥 웃으면서 스프레이를 잡는다.

/글 양해준 기자 yangyanghae@yonsei.ac.kr
/사진 조진옥 기자 gyojujinox@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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