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 인터뷰

갈색과 가을. 서로 묘하게 얽혀있는 이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작곡가 겸 싱어송라이터 윤건(30)이다. 과거에 몸담았던 그룹 ‘브라운아이즈’의 이름에서, 가을이 끝날 무렵에 나온 솔로 앨범과 「갈색머리」라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을남자’로 기억한다. 이런 세간의 평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계절도 11월입니다”라는 그의 말은 함께 있던 매니저와 기자로 하여금 고개를 절로 끄덕이도록 만들었다.

어느 저녁. 기자는 강남구 삼성동을 헤매다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 안에서 한창 음반작업 중에 있던 그가 나왔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젊은 호남형의 남자. 그는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기자 일행을 위해 손수 커피를 타주는 그의 소탈함으로 만남은 시작됐다.

젊은 나이, 그러나 베테랑이다.

'1999대한민국' 자켓사진

우리대학교 음대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96년, 당시 2학년이던 그는 이미 음악계에 뛰 어들었다.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먼저 활동했었고, 이후에는 그룹 ‘팀’의 리더에서 ‘브라운아이즈’의 멤버, 지금의 솔로활동에 이르기까지 젊은 나이에 많은 일들을 해냈다. 혹시 알고 있는가? 디바의 초창기 앨범의 곡들과 대규모의 힙합 프로젝트였던 ‘1999대한민국’이 당시 20대 초반이던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사실 ‘1999대한민국’ 이전엔 가수들의 개성에 맞춰 곡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제가 하고 싶은 길을 따라갔지요”라고 그는 얘기한다. 그리고 그 이후 브라운아이즈의 약 2년여 간의 활동과 솔로로 독립하며 갈수록 자신의 음악에 다가서고 있다고 한다.

그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맞추는 일이 너무 힘들어 친숙한 사람들과 오래 일을 하는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음악의 색깔을 찾기 위한 그의 가슴앓이였다. 그렇기에 작사가 한경애씨나 기타리스트 함춘호씨와 같이 ‘잘 맞는’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함께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저는 곡을 지은 후 제목만 붙일 뿐 가사는 한씨에게 모두 맡기죠. 그러면 한씨는 제 ‘마음을 들여다 본 듯한’ 가사를 지어내죠.” 이렇게 해서 윤건은 자신의 노래는 ‘윤건만의 분위기’로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사람들과 한창 3집을 준비하고 있다. 3집은 그의 1,2집보다 조금 더 리듬을 강조한 음악을 담을 예정이라 한다. 리듬감은 그가 좋아하는 음악의 필수 요소다. “제가 만든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그루브한 「비오는 압구정」과 보사노바풍의「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입니다.”고 말한다. 그가 만들 리듬감 넘치는 음악을 기대케 한다.

당신, 연세대학교 땐 어땠어요?

갑자기 대학교를 재학하던 당시의 대학생 윤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 역시 어느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한다는 우리대학교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클래식과 피아노 중심의 수업은 저에겐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실용음악과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던 저에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있었죠”. 그런 이유로 당시에 그는 친구들과 신촌의 술집을 전전하며 방황하기 일쑤였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갔다. 그러다 하루는 무작정 스튜디오에 찾아가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조르며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대중음악과의 인연은 시작된다. “무작정 찾아가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음반정리, 청소부터 시작한거죠.”

   

한편 그는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윤건은 학내 중앙동아리 ‘연세TV'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다. “연고제 농구티켓을 구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제가 카메라를 들고 가면 주위 친구들이 함께 붙어 들어가곤 했죠”, “동아리의 한 선배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그곳 야외에서 시네마천국을 보여줬는데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야외상영이 실제로 이뤄진 것 같았죠. 일생 중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이에요”라며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대학시절 학우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지녔음을 짐작케 했다. “물론, 지금 학교 앞을 스칠 때면 ‘이게 내가 다닌 학교인가'하고 혼자 놀라기도 하지만요.”

그는 담담하게 대학시절 사랑얘기도 해주었다. “2학년 1학기 때였을 겁니다. 음악대 학 전공 수업이었는데, 특이하게 신학과 커플이 뒤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신경쓰지 않았는데 하루는 우연히 고개를 돌렸고, 저는 커플이던 그 여학생에게 반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엔 꾸준히 그녀의 뒷조사를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신과대 앞 전화박스에서 통화하던 그녀를 보고 바로 고백했지요. 애인이 될 수 없다면 친구로라도 지내자고. 결국 2달 후에 전 그녀와 사귈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해가 질 무렵이면 연인의 손을 잡고 음대 건물로 몰래 들어가 ‘그녀 앞에서, 그녀를 위한’ 피아노곡을 연주해 주었다는 윤건. 그런 남자에게 반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으리란 짐작도 해본다.

 

그의 옛날 얘기에 빠져있다 시간이 훨씬 지났음을 깨닫는다. 그가 건네던 따뜻했던 커피는 어느덧 식어있었다. 팬이기도 한 기자 일행이 사인을 부탁하자 그는 손수 펜을 들어 응해줬다. 일행 한명 한명에게 모두 다른 멘트를 적어주는 ‘센스’있는 남자.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갈색머리’를 부르는 그의 여린 감성이 다시금 느껴지는 건 왜였을까.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