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정소진 기자

   
/정소진 기자
선과 악이 극명하게 갈리는 기사의 보도에 있어 기자는, 두 가지 다른 시선을 받게 된다. 보도가 필요했던 이들로부터는 사회에 득이 되는 진정한 이성의 목소리라는 시선, 그리고 진실을 숨기고자 했던 이들로부터는 사건의 이면을 파헤쳐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악역의 하이에나라는 시선. - 여기서 악역이란 사회적인 악역이 아닌 당사자에게 개인적인 피해를 입힘으로 이름하여진 악역을 말한다 - 후자의 시선만을 꿈꿔 기자가 된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사회를 위해 진실을 말할 것을 꿈꾸며 기자가 되지만 취재 일선의 현실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진실된 보도라도 어떤이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보도를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 10월, 교통사고 제보가 나에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학내에서 승용차가 경비원 아저씨를 치었다는 것이다. 담당부서에 확인 결과 별다른 문제는 없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잘 합의하여 끝났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 나는 이 사건을 최근 주마다 한 차례씩 있다시피 하는 여느 학내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이라 생각했고, 합의까지 잘 된 마당에 학내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기사화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건의 경과만 확인하고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한 달 여후, 다른 사건을 취재하다가 또다시 그 교통사고 이야기를 듣게 됐다. 겉으론 무난하게 합의하고 끝난 듯했던 사건의 내막엔 가해측이 무면허였으나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소속 병원으로 후송된 피해자에게 날조된 진단서가 발급됐었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후송된 병원의 의사로 재직 중인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결국 기사 마감일을 하루 남긴 상황에서 취재에 착수했다. 사건 당일 현장 조사를 했던 파출소 담당 경장, 보험회사 직원, 병원 원무과 담당자, 경비업체 소장, 피해자, 가해자 등 취재한 사람들은 줄잡아 수십 명.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각각의 입장이 모두 달랐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묘히 돌려 말하는 사람들, 아예 언급을 꺼리는 사람들 등 가지각색의 반응과 입장에 어느 것이 사실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해야 했다.


취재를 하면서도 많이 떨렸던 것이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사실 확인이 부족해 기사에 문제가 있을 경우, 해는 고스란히 당사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접했던 정보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가해 학생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을지도, 의사로 재직 중인 가해학생의 아버지는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사안이 마감 시간을 앞둔 촉박한 상황에서 사실이 무엇인지 조차 확실치 않아지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결국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던 나는 기사 마감시간을 넘겼고, 기사는 보다 자세한 취재를 한 이후 다음호에 싣기로 결정이 났다. 마감시간을 넘겨가며 내가 느낀 감정은 사건을 재빨리 보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는 악역의 임무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었다. 이 후 차후 취재 결과 몇 가지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데다 피해자 측이 개인적인 사고를 기사화 시키는 것을 원치 않아 기사화 하는 일은 무산됐다. 일주일여 짓눌렸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였다.


이 후에도 악역을 맡는 경우는 종종 일어났다. 사회를 위한 이성의 목소리와 악역의 하이에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취재과정에서부터 기사를 쓰기까지 나는 힘들게 하곤 했다.


요즘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는 모 언론사로 말들이 많다. `세계 생명과학계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애국심마저 덧입혀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성역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에 다가가기 위해 근거를 확보하고, 성역 내부에 단서의 창구를 뚫어야했던 외로운 싸움을 작게나가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론의 역할과 악역의 중압감에서 해야했던 고민은 나와 같으리라.

아직은 부기자, 이제 곧 정기자. 앞으로 부딪쳐야 할 고민의 순간은 더 많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악역으로 몬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시련으로 나약해져서는 안되겠지. 진실의 햇볕이 내리쬐는 이면엔 그림자가 드리우는 법. 앞으로의 기자 생활에서도 춘추 기자들 사이에 도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불타는 가슴’으로 뜨겁게 맞서기를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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