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정치 작은 총학, '니가 필요해'

‘탈정치 작은 총학, 니가 필요해’ 선본이 정치운동세력의 총학생회(아래 총학) 구성을 반대하며 당선돼 42대 총학으로 일해온 지 약 1년이 돼간다. 이른바 ‘비운동권’ 총학을 내세워 당선된 이들은 이후 학내는 물론 중앙 언론사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탈정치를 비롯한 그들의 주요 공약이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얼마나 실현됐는지,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들이 내세웠던 공약은?

총학은 탈정치, 교육, 정보, 여성, 복지 등 8가지 분야에서 20여개의 공약을 제시했다. 이 중 실현된 공약은 중앙도서관(아래 중도) 앞 행사 전면 철폐, 본관 점거 전면 배제, 현수막 철거, 중도 좌석배정 시스템 구축 등이다. 특히 중도 좌석배정 시스템 구축은 사석화에 대한 대안 마련이 급했던 상황에서 학교 측과 지속적인 논의로 성공을 거뒀다. 또한 총학은 홈페이지에서 학생들의 민원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처리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학내 체육시설 확충, 예비수강신청제도 부활, 조모임공간 확충, 이슈시사토론회 개최 등의 공약은 학교 측과 논의가 잘 이뤄지지 못했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장 윤한울군(정외·02)은 “임기 초반부터 논란이 된 탈정치 관련 업무에 집중하다보니 교육·복지 등의 문제에 신경쓸 여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절차를 무시한 권한 행사

한편 총학은 업무 집행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를 수호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한 경우가 있어 비판을 받았다. 이는 특히 등록금 협상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아래 오티) 장소 결정 때 심각한 문제가 됐다. 지난 1월 총학은 학교 측과 함께하는 등록금책정심의위원회에서 등록금 인상률을 5.7%로 확정했다. 이전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비록 정족수 미달로 의결되지는 못했으나 ‘약 3~4%의 물가상승 수준을 감안한 정도를 등록금 인상률의 최대치로 한다’는 중운위원들의 합의를 번복한 것이다. 또한 총학은 장충체육관에서 신입생 오티를 하려다가 중운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오티를 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다음 날 사전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오티를 강행하겠다고 공지해 문제가 됐다.


이렇듯 각 단과대의 대표자와 함께 의결하거나 합의한 사실을 일방적으로 뒤바꾸는 총학의 이러한 태도는 탈권위를 외치던 ‘작은 총학’의 이름을 무색케 했다. 당시 총학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일부 중운위원들은 “현 총학이 학생들을 대표하는 중운위의 의결에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군은 “중운위에서 제기하는 의견들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에 의문이 들었다”며 “절차를 무시한 잘못은 인정하나 총학의 기조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탈정치란?

무엇보다도 총학이 가장 크게 내세웠던 것은 정치 활동으로부터 탈피하는 ‘탈정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면 진정한 탈정치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한 예로 지난 3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학내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백낙준 동상 철거를 주장한 것에 대해 총학은 학내를 포함한 중앙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였다. 여기에서 윤군은 동상철거 주장에 대해 “막연한 반일감정을 토대로 한 여론몰이”로 규정하는 동시에 “친일잔재 청산 문제가 교육투쟁 분위기 형성과 연계될 것을 심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입후보 당시 총학이 ‘임기동안 교육문제를 제외한 정치 사안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겠다’던 주장에 근거해 기자회견 자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친일청산 문제를 교육투쟁과 연관시킨 것은 기존의 정치 세력 단체를 과도하게 견제한 시각에서 비롯된 억측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편 총학은 민중연대·통일연대·민주노동당 학생들이 지난 8월 ‘8·15 민족대축전’ 행사 준비를 위해 우리대학교에 머무르려 했던 것에 대해 “학문을 연구하는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편의를 저해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며 1인 피켓시위를 벌이는 등 학교 측과 함께 장소 사용을 거부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탈정캄라는 신념을 지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뉴라이트 운동 단체인 자유주의 연대가 이들의 행동에 긍정적인 찬사를 보낸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함으로써 ‘탈정캄의 기조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윤군은 “관례적 인사였을 뿐 정책에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닌데 이를 정치적으로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대답했다.


한편 “집행부 내부에서도 ‘탈정캄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 마찰이 발생했었다”는 윤군의 말과 같이 ‘탈정캄의 개념 논란으로 인해 지난 3월 집행총괄에 이어 9월 부총학생회장과 재무국장이 잇따라 사퇴하기도 했다.


남다른 출발로 처음부터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했던 총학은 달라진 대학 사회에서 총학의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의견수렴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하거나 일방적인 행동으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 ▲모호한 ‘탈정캄의 개념으로 총학 내·외부에서 일관적인 기조를 유지하지 못한 점 ▲이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교육 및 복지정책 실현에 차질을 빚은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현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에 이어 다음 총학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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