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원이 될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난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를 ‘딸들의 반란’으로 명명하고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아끼지 않았다. ‘반란’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그다지 유쾌한 제목은 아니었지만, 한 편으로는 언론이 성별권력의 존재를 이렇게 분명하게 나타내는 제목을 지은 것이 놀랍기도 했다. (물론 한 군데에서 쓰니까 모두 따다 쓴 것 같기는 했다.) 몇 주 전 방송에서는 여전히 ‘시집가면 출가외인’인 딸들에게 종중을 물려주면 필시 종중이 무너질 것이라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생생한 인터뷰로 흘러 나왔다. ‘차라리 우리 집안사람이 된 며느리가 낫지, 딸들이 제사를 모시게 되면 가문이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최근의 변화를 감지한 근심이나 세상은 아직 변화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뒤섞여 보는 이의 심정을 착잡하게 했다.

  호주제도 폐지되었고, 이제는 족보에 오르지도 않은 채 무수한 ‘가문’의 딸들이 묻혀버리는 시대는 지난 듯 하다. 그러나 아직도 ‘대를 잇는다’는 말로 대표되어 엄숙하기 짝이 없는 부계혈통의 너덜너덜한 아우라는 계속되고 있다. 성별에 따른 낙태가 계속 되고, 여성에게 가문에 도움이 되는 사윗감을 구할 것을 종용하거나 가문에서 손수 결혼 상대를 구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원치 않아도 임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물론 이제 이런 모습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여성의 존재를 도구화시키는 ‘가문’의 영광은 결국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 또는 사위로 이어지는 남성들의 리그가 된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여성은 그렇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어떤 이들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세대는 ‘종중원’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들이 없는 집에서 ‘기둥이 될 남자사위’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는 것이나 ‘손주 낳아줄 며느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드라마 속의 일 만은 아니다. 가족을 꾸리는 것을 자신의 삶의 계획과 연결시켜 섬세하면서도 주체적으로 끌고 나갈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막상 가족을 꾸릴 때 성역할을 조정한다 해도, 가족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사건과 사고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병원에서 입원 환자를 간병하는 친인척들 중 남성의 모습이 눈씻고 찾아봐도 몇 명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아이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일단 어머니를 탓하고 보는 (심지어 범죄 심리 분석에서도 어머니를 탓하는 것은 단골 메뉴이다.)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때론 분노가 일 지경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의 계획이 가부장적 결혼의 조건들이 맞지 않아 협상과 조정을 원해도, 결국 가족과의 심리적 단절을 경험하거나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는 결과에 만족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가문’에서 여성이 자신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정하는 것은 많은 장애물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 그 장애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조금 뜬금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명명한 정부의 용기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대에 흐름에 반하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미술사학자 멀린 스톤은 그녀의 저서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에서 고대의 여신 숭배의 근원과 역사를 보여준다. 이성 간의 성기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모계 사회와 ‘모신’으로써의 여신 숭배가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어머니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DNA 연구도 없었던 그 시절에 아이의 아버지를 확인할 길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적 파트너를 고정시키는 결혼 같은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아이를 낳는 것은 신이 여성의 몸에 부여한 신비한 메커니즘이었다. 물론 특정 성별에 따른 계보만을 인정하는 사회는 해체되어야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남성의 것’이 되어있는지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해준다. 이제 여성들은 ‘그들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과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한다.

/들레 helen0415@hanmail.net (내안에 차오르는 여성주의 물결 17대 총여학생회 '움.펼.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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