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 Today is 황당

그여자

딩동~
일요일 저녁, 문자메세지 도착 수신음이 울렸다.
난데없이 뜬금없는 문자 한통.

남준 : ‘미안한데, 혹시 누구시죠?’

김...남준? 아, 얼마전 연세춘추 95기 수습기자 환영회에서 만났던 애구나. 그런데 난데없이 누구냐고 묻다니... 기껏 전화번호 저장해줬더니 어이가 없군.

수현 : ‘어.... 난 연세춘추 95기 박수현이라고 해^^;;;’
남준 : ‘아... 알겠다. ㅋㅋ 미안~’

저 성의없는 말투...연세춘추에 수습기자로 뽑힌지도 꽤 지났는데, 아직까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실망이야.
하지만 뜬금없이 남준이가 보내온 문자덕분에 우리는 그 문자를 화제삼아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전엔 알지 못했던 사람이 한 명 한 명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연세춘추의 수습기자가 되고 난 뒤, 이렇게 15명의 동기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도 내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남자

; 4월의 어느 오후 정문 앞에서 그 애를 처음 봤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고 긴 생머리에 머리띠를 한 왠지 착해 보이는 모습.
이름은... 박수현이라고 한다. 말 걸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2. 숙제  ; Today is 설렘

그여자

개강 뒤, 한 달 쯤 지났을까. 각종 보고서 제출과 조모임이 한창 많아지고 있을 때, 연세춘추에서도 수습기자로서 해야 할 임무가 꽤 많아지고 있었다. 수습기자가 담당해야하는 ‘우리동네’와 ‘애드바룬’, ‘웹진기사’와 더불어 각 부 부장님들께서 내 주시는 ‘취재계획서 작성’에 ‘서평’까지... 기자의 소양을 쌓아가는데는 다 피와 살이 되는 일들이었지만, 새내기인 나로서는 빡빡하게 밀린 각종 숙제들이 아직까지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었다.
목요일 밤 10시쯤, 서평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문득 메신저를 통해 남준이에게 연락이 왔다.

남준 : 서평은 다 썼니?
수현 : 아니... 이제 쓰려고 ㅜㅜ 아~ 힘들다. 나 할 일이 왜 이렇게 많지?

한참 뒤, 다시 반짝거리는 메신저 창.

남준 : 저... 너 할 일 많다고 그랬지?
수현 : 어... ㅜㅜ
남준 : 그러면, 내가 대신 해줄까?
 
이 말을 듣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막무가내로 내 짐을 떠넘긴다는 것도 너무 미안했고, 당연히 내 스스로 숙제를 해야하는 것이 도리인데 수습기자로서의 내 의무를 어긴다는 것이 양심에도 너무 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앞엔 각종 보고서와 웹진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현 : ........내 것까지 해주면 니가 너무 힘들잖아.
남준 : 괜찮아. 책 읽는 김에 하나 더 쓰지 뭐.
수현 :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내가 정말 맛있는거 사줄게
남준 : 그 말 진짜지? 난 그런 건 절대로 안 잊어버린다 ㅋㅋㅋ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지만, 난 남준이 덕분에 무사히 내가 해야할 일을 마칠 수 있었고 남준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 뒤로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 뿐인 소중한 존재가 됐다.

그남자

아직 수습이라 본격적인 신문사 생활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담스럽다. 서평숙제라니! 대학 와서는 이런 것 안할 줄 알았다.
어쨌든 책도 읽어야 되고 참 귀찮게 됐다.
그 애는 숙제 다 했을까?
(난 그때 이후로 자주 문자를 보내고 있다)

남준: 너 서평 숙제 다했어?
수현: 아니 ㅜㅜ 나 웹진도 써야 되는데 어뜨케~

흠... 왠지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 ㅋ

#3. 봄날... 우리는
; Today is 행복

그여자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드디어 연세춘추 95기 수습기자들이 MT가는 날~ 사귀기로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아직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다른 동기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 보다 1시간 쯤 일찍나와 신촌거리를 마냥 걸었다. MT가는 날인만큼 유난히 화창하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었다. 따스한 햇살에 이끌려 우리도 서로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우리 손 잡고 걸을래?”
남준이의 수줍은 한마디... 그리고 살포시 맞닿은 손길...
따뜻하고 행복한 봄날이다.

그남자

완전히 쪽팔린다. 이론.....
걔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아 그냥 모른 척 하고 잡을 껄 물어보긴 왜 물어봤지?

#4. 월화수목금토, 그리고 너
Today is 우울

그여자

다른 커플들은 여유롭게 까페에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주말엔 소풍도 가기도 하고 그럴텐데, 우리는 매일 일에 쫓겨서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것 같다. 
둘 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연세춘추 기자가 됐고, 춘추를 통해 서로를 만날 수 있었지만, 가끔은 우리가 이래야만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방학 때도 어디한번 제대로 놀러가지 못하고, 학기 중엔 평가 회의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월화수목금토... 빡빡한 일정.
연세춘추 덕분에 편집국에서 매일 꼬박꼬박 얼굴을 맞대지만, 밤새 집에서 기사 평가하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만나고 편집국에서 이틀 밤을 새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대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가끔은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아무잘못 없는 남준이에게 풀 때도 있고 말이다. 나도 예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매일 피곤하고 지친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만 든다.

그남자

요즘따라 걔 표정이 별로 안 좋다. 내가 뭘 잘못했나?

#5. 우리들의 100일은...
Today is 슬픔

그여자

그 날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연세춘추 방학호 제작 기간이었다. 100일이 제작기간 중이라 제대로 만나서 놀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처음엔 많이 씁쓸했지만 자정에 남준이가 집 앞으로 찾아와서 조촐하게 이벤트를 열어준 덕분에 잠깐이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
그 날, 7월 18일은 유난히도 더웠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동안 오전 내내 방학호의 보도기사를 쓰기위해 서로의 취재처를 돌았다. 가슴에는 기자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손에는 취재수첩과 펜을 쥐고 있었지만 따가운 햇살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취재하느라 100일 날까지도 서로가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저녁 무렵, 함께 학교를 거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냥 눈물이 흘렀다.  
연세춘추가 싫어서도, 연세춘추의 기자라는 것도 싫은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지치고 힘겨워지는 이런 상황을 호소하고 아무 생각 없이 기대어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넌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누구보다도 내가 처해있는 힘든 상황을 잘 이해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존재... 2005년 여름, 그 애가 없었다면 내 눈물은 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남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기쁘지만, 위로 해 줄 수 있는 것도 기쁨이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해야 할까?

#6. 프로페셔널한 커플 !!!
Today is 파이팅

그여자

“이 기사 한번 읽어봐줘. 어때?”
“리드에 이런 내용보다는 다른 내용이 추가되는 게 낫겠는데? 본문을 좀 더 체계적으로 나눠봐”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대화는 단순한 노닥거림이 아닌, 우리만의 작은 편집 회의로 변화됐다.
물론 일에 치여 피곤에 지친 모습만 보일 때도 있고 가끔 힘들 때는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괜한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준이에게 쌓여있는 일과 그것들 때문에 지쳐있는 표정을 볼 때 마다 안타깝기도 하다. 앞으로도 난 바쁜 일정에 치어서 또 많이 기대서 울기도 하고 짜증도 많이 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난관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언젠가 남준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냥 커플이 아니라 춘추도, 학점도, 연애도 모두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프로페셔널한 커플이니까!!!

#7 마지막- 너는 나랑 왜 사귀니?

그남자

언젠가 니가 나한테 물었던 말
“너는 나랑 왜 사귀니?”

어쩌면 누구나 그렇듯 연애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새벽 늦게라도 반갑게 전화 받아 줄 그 어떤 이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 가끔 농담처럼 던지는 너의 질문에 나는 더 큰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가장 온전히 사랑받고 가장 온전히 사랑을 주는 것.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 순간 너와 함께하면서 느껴지는 착각 같은 가능성만으로 지금의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어느날 거리에서 불행한 여자 옆을 지나다가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몸이라는 세속적인 표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참하게 어떻게 바꿀 수 있는 표면 보다 더 높은 곳에 사랑을 놓아 달라는 욕구이다.(중략)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는 이마에 점이 생긴다든가, 나이 때문에 몸이 시든다든가, 불황 때문에 파산을 한다 든가 하는 식으로 우리 표면에 불과한 것에 손상을 주는 사고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설사 우리가 아름답고 부유하다고 해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 해서는 안 된다.
(중략)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 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상태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자리 잡은 자아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


“너는 나랑 왜 사귀니?”

   

 

                                                 /김남준 기자 aganaga@yonsei.ac.kr ,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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