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흔드는 짧은 언어, 익명 문자메시지

‘1010235(열렬히 사모합니다)’, ‘1004(당신의 천사로부터)’

지난 90년대 중후반 삐삐가 인기였을 때에는 이와 같이 숫자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삐삐가 군대, 병원 등 특정 분야 이외에 자취를 감춘 지금, 휴대폰의 문자메시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더구나 발신자의 번호를 찍지 않고 보낸다면 삐삐가 가졌던 익명성에 확실한 내용전달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잠잠하다 싶으면 익명 문자메시지가 문자사서함을 두드린다. 수능 직전에 유행하는 ‘친구 x명에게 보내고 되돌아온다면 원하는 대학 합격한다’는 문자, ‘X명에게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문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문자들은 귀찮지만 완전히 무시하기엔 왠지 찝찝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돌기 시작하면 한참동안 휴대폰과 휴대폰 사이를 헤매기도 한다.

이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지 상황을 상상해보자.

상황1. 그녀에게‘만’ 보낸다. 그녀의 마음을 알고 싶다. ‘소중한 사람에게만 보내세요. 다시 받는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래요’ 문자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면 좋을텐데.
상황2. 세상 가운데 나 혼자 뚝 떨어져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중한 사람에게 답문을 달라는 익명의 문자를 보낸다. 문자의 속뜻은 ‘누구든 내 생각을 좀 해줘’라고 할 수 있다.

인간행동연구소 장근영 선임연구원은 “익명으로 문자를 보내 감정표현을 한다면 반응이 없거나 거부당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익명문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자아를 확인하려는 심리는 청소년기에 강한데, 성인기에도 자아 확인의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지만 사람들의 이면에는 스스로의 감정을 익명이란 방어막 뒤에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문자메시지는 언제 어디서든 보낼 수 있고 들킬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예전의 익명 편지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렇다면 익명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상상해보자.

반응1. 괘씸하다. 고러 난 아무한테도 보내지 않는다. 왜 사람의 마음을 이런 얄팍한 방식으로 확인하려고 하는거지?
반응2. 난 섬세한 사람이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지금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는가? 나에게 보냈을 만한 사람한테 단체문자로 보낸다.
반응3. 귀찮다. 누군지 어지간히 심심하구나. 안보내면 그만이지. 아마 문자 이용량을 늘리려는 이동통신사측의 음모인 것 같다.

   

익명문자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 꼭 알아내고야 마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동 통신사 KTF에는 ‘메시지 매니저’라는 서비스가 이는데 이를 신청하면 자신의 휴대폰으로 주고받은 모든 문자가 저장돼 있어 다시 볼 수 있다. 메시지 매니저는 익명으로 온 문자메시지도 뒷번호 네 자리를 제외한 번호가 나와있어 누가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서비스에 변경이 생겼다. 2005년 6월 22일 정보통신부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이 아닌 경우  익명으로 보낸 사람의 개인정보도 존중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번호 전부를 비공개하도록 규제해 이용자가 문자 내용만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익명 문자라고 무조건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음란·욕설·협박 문자 등은 휴대폰 직영점에 문자를 지우지 않은 채 신분증을 가지고 가면 일주일 이내의 문자까지 추적이 가능하다.

애틋한 마음을 전하든 협박을 하든 익명 문자는 보다 솔직한 자기노출의 환경을 제공하고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익명 문자는 직접 전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보내기 전에 받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토커로 기억되거나 혹은 가까운 경찰서에서 전화가 올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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