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제기관의 명의로 남은 땅을 찾다

 

해방 59년을 맞는 2004년 현재, 우리 농민들이 피땀으로 일구는 땅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재산이고 우리는 여전히 조선총독부(아래 총독부)의 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국제 여론몰이를 통해 동해를 일본해로 왜곡하듯이, 우리 국토의 일부분이 일제시대 이 땅을 강제 점거했던 일본 기업들의 명의로 여전히 남아 왜곡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 황당하고 불쾌한 왜곡을 방치하고 만들어내는 주체는 다름아닌 대한민국 정부다.


그 땅을 찾아서…


지난 2003년 감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총독부 등 일제 기관 명의로 등기돼 있는 땅은 확인된 면적만 7천7백18만㎥에 이른다. 이 중 몇몇 필지는 감사원 발표 후 국유화 조치됐으나 일부는 여전히 일제 기관 명의로 남아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화산리 119-1번지. 일제 기관 명의로 남아 있는 그땅을 직접 찾아 나섰다. 이번에 찾아간 청양군에는 화산리 119-1번지(1716㎥), 140-2번지(1008㎥)등 네 필지가 구 일제 기업인 중천광업주식회사(아래 중천광업) 명의로 등기돼 있다. 군청에서 발부받은 토지의 경계, 지번(地番, 토지의 번지수), 지목(地目, 토지의 이용 목적)이 표시된 지적도 등본을 통해 119-1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얽히고 설켜 조각조각 어우러진 필지들 사이에 움츠린 채 자리잡은 119-1번지 지적도를 손에 쥐고 화산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누런 소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땅, 밤송이가 흩어져 떨어진 길, 외지인이 들어왔다고 빼꼼히 고개 내밀고 쳐다보는 어린아이.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화산리는 우리네 시골 정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땅, 화산리 119-1번지


땅을 찾아 마을을 몇바퀴 돌며 헤매고 있을 때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도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적도를 꺼내와 구역구역을 되짚으며 위치를 설명하던 할아버지는 119-1번지를 가리키면서 이곳의 소유주는 모르겠다고 했다. 필지마다 까만 연필로 소유주를 빼곡히 적어둔 할아버지의 지적도에 119-1번지만이 아무 표시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헤매기를 한시간 가량, 119-1번지 근처 지역에서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집주인에게 이 근처에 일본 기업 명의로 된 땅이 어디냐고 묻자 집주인 윤아무개씨(47)는 “거기는 일본 땅이 아니라 내 땅이야”라며 발끈했다. 우선 땅부터 보고 얘기하자는 윤씨의 말에 윤씨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119-1번지에는 50여그루의 밤나무가 뿌리를 박고 살고 있었다. 밤나무가 심어진 119-1번지 아래로는 녹두를 심은 윤씨 명의의 밭이 있었고, 그 위로는 산이 있었다. 녹두와 밤나무는 시원하게 한바람을 맞으며 같은 모양으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두 필지의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시 돋힌 까칠한 밤송이는 이 땅의 돋힌 가시와 까칠한 흔적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땅의 소유권자


땅을 돌아본 뒤 윤씨의 집에서 땅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었다. 윤씨는 “김기옥이라는 사람이 일본 회사 땅을 샀는데 그걸 우리 장인이 다시 산 거지, 그 때 쌀 70가마를 주고 샀어”라고 답한다.

일제시대 때 화산리에는 전쟁에 필요한 일본의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텅스텐과 중석 광산이 개발됐다. 광산을 관리하던 중천광업은 주변의 개인 토지를 자신들의 명의로 몰수했고 등기 절차까지 마쳤다. 일제가 패망한 후 중천광업은 화산리에서 자취를 감췄고, 지난 1969년 10월 8일 당시 이정규 국세청장은 땅의 일부를 김기옥씨에게 팔아넘겼다. 김씨는 다시 여러 사람에게 땅을 나눠 팔았는데 윤씨의 장인 박학순도 그 중 한명이었다.

 

문제는 등기였다. “그때는 등기 없이 거래하던 시절이라 거래가 성립된 거지. 그게 지금까지 등기를 못 옮기고 일본회사 명의로 남아 있는 거야”라는 윤씨의 설명대로 국세청은 김씨에게 땅을 팔 때 등기를 정리하지 않았고, 그 땅들은 중천광업 명의로 보존등기됐다. 이 경우 김씨가 등기를 중천광업에서 자신의 명의로 옮기지 않는 이상, 윤씨는 등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제자리를 찾았어야 할 상당수의 토지가 국가의 관리 소홀 속에 해방 후 지금까지 일제 기관 명의 그대로 방치됐고, 윤씨 경우와 같이 오늘날까지 등기 문제로 남겨져 있다.


국가의 관리 상황 


토지관리에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인 청양군청을 찾아갔지만 군청은 방임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청양군청 재산관리담당 양대규계장은 “매수인인 김기옥이 등기를 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지난 2003년 일제 기관의 등기를 국가 등기로 소유권 이전하는 과정에서 과거 국세청이 일부 토지를 개인에게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고, 매각된 토지는 국유화 조치에서 제외된 채 일제 기관 명의로 남게 됐다. 남은 토지들은 마땅히 실소유주에게 돌아가야 했으나 정부는 이를 방치해둔 채 등기를 제 때 하지 않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양계장은 “앞으로 계속적인 색출 작업을 통해 등기 이전을 돕겠다”고 말했지만, 국가가 이 사안에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119-1번지 필지와 같은 경우 윤씨가 등기를 되찾는 방법은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이(아래 특별법) 발효됐을 때 윤씨 자신이 실질적인 소유권자임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유권 문제가 있는 토지의 등기를 바로잡는 특별법의 경우 10년에 1번 정도 불규칙적으로 발효되고 있어 그 기회가 굉장히 적다. 또한 가장 최근에 특별법이 있었던 지난 1995년에는 군청이 특별법이 발효됐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통보하지 않아 많은 주민들이 자신의 토지를 되찾을 기회를 놓쳤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3년 토지 정리를 위해 현지조사를 나온 군청 직원들은 매매계약서를 보여주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윤씨의 아내 박옥란씨(41)에게 “어쩔 수 없으니 차라리 국가와 임대계약을 맺으라”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재정경제부(아래 재경부)의 태도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재경부 국유재산과 박희량 사무관은 “개인의 등기 문제는 개인 이해관계에 속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신경 쓸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모른다”와 “어쩔 수 없다”가 남긴 것들


아직도 상당수의 우리 땅을 조선총독부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중천광업주식회사가, 그밖에 많은 일제시대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만약 지금 밤나무가 심어진 119-1번지 땅에 축사를 운영하려 한다면 땅주인 윤씨는 중천광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올 연말, 특별법이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특별법이 발효돼도 윤씨가 등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실상 소유권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윤씨는 김씨에게서 119-1번지를 구매한 매매계약서를 지난 2003년 갑작스런 화재로 잃었다. 자신의 매매계약서를 제시할 수 없는 윤씨가 등기를 받으려면 김씨에게 땅을 상속받았다는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김씨는 현재 사망한 상태고 그의 가족들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때문에 특별법이 발효된다 해도 윤씨가 등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윤씨의 경우처럼 시간이 흘러 자신의 실소유권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해방 후 몇십년 동안 국가가 방치해뒀던 땅은 제 주인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국가의 그 중요한 절차가 우리 땅의 제자리 찾기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국토를 왜곡하며 떠들어대는 다른 나라들을 제지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정부는 우리 테두리 안에 있는 우리의 땅마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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