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준 뉴미디어부장(불문·23)
이서준 뉴미디어부장(불문·23)

 

내가 열아홉살 때도 난 스무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
모두 다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 하기에 바쁜데
나는 개 나이로 세 살 반이야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아
-검정치마 「강아지」 中

 

“기자님이라니. 압존법 모르니?” 지난 2월, 첫 편집회의에서 편집인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말을 이어가던 나는 당황해서 그만 말을 멈췄다. “군대 아직 안 갔으면 압존법이 익숙지 않죠, 뭐.” 동료 기자가 다행히 나를 대신해 말을 이어나갔다. 

‘압존법’은 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존대 여부를 화자가 아닌 청자를 기준으로 하는 어법이다. 편집인 교수님과의 대화에서는 동료 기자를 지칭할 때 ‘기자님’이라는 표현이 아닌 ‘기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내가 ‘기자님’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교수님을 존대하지 못한 잘못된 어법이다. 

내게 압존법은 익숙지 않다. 압존법은 직장이나 군대 등, 직급이 나뉘는 곳에 주로 쓰인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을 만나온 나로선 크게 접할 일이 없었다. 압존법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은 수능을 준비할 당시 국어 문법에서 짧게 익힌 것뿐이다. 낯선 압존법에 말문이 막힌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스무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열아홉살 이후,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해내야 할 상황이 점점 생긴다. 낯선 것들은 어설플 경우, 항상 꾸중이 뒤따랐다. 꾸중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든다. 처음 술을 먹기 시작한 20살 무렵 배운 주도*문화를 시작으로 22살에 마주한 압존법까지.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의 관용 덕에 마주하지 않은 것들이 이제는, 낯설어도 처음부터 익숙해야만 한다. 

나는 이미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 하기에 바쁘다. ‘낯선 것’은 이제 나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늘상 나를 벅차게 할 때가 있다. 알고 싶은 것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이제는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다.

 

짖어대는 소리에 놀라서 도망가지마
무서워서 그런 거야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검정치마 「강아지」 中

 

낯선 것을 모른 채 떠드는 내 모습은 때로 ‘무지’로 작용한다. 상대는 내 ‘무지’에 당황한다. 이들은 나를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짖어대는’ 사람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당황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때론 무서워서 말이나 행동의 실수가 잦은 것뿐이다. 

인간 나이 30살은 개 나이로 세 살 반이다. 내 나이 21살, 개 나이로 한 살 반이다. 가끔은 누군가 나이를 묻는다면 “나는 개 나이로 한 살 반이야”라고 대답하고 싶을 때가 부쩍 생기기도 한다

 

* 주도: 술을 마시거나 술자리에 있을 때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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