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은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후, 의료현장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의료인으로 인해 적절히 보호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3월부터 병원에서 일을 시작해야 할 전임의와 인턴들도 임용을 포기했다. 병원에서 일할 젊은 의사들이 대거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지난 2023년 10월 19일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4년 업무계획으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를 포함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첫 단추부터 파열음을 일으키며 국가적 재앙으로 귀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중 첫 번째 과제로 의료인력 확충을 내세웠지만, 의료계와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합의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국민 생명을 담보로 벼랑 끝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권력과 의료권력의 충돌 속에서 속절없이 희생되고 무너져 가는 것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건강할 권리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 개혁 분쟁에는 정작 당사자인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의 본질은 정부와 의료계가 모두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필수·지방 의료 붕괴에서 비롯됐으며, 주요 원인은 지역 공동화, 낮은 출산율, 낮은 의료수가 등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속히 정부, 의료계, 학계, 시민(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1948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의사협회에서 제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의업을 시작하는 의사들에게 귀감이 돼 왔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는 내용대로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은 즉시 병원으로 돌아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정부는 협상에 나서 소통을 통한 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의료현장에는 완치의 희망을 안고 찾아온 중증 환자,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 등 의료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국민이 있다. 국민을 위한 의사의 역할, 국민을 위한 정부의 소통이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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