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한국 정부는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따른 대응조치로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9.19 합의 1조 3항, 즉 비행 금지 조항을 효력 정지하고 대북 정찰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23일 사실상 군사합의 전면 파기 선언으로 대응했다. 지상, 해상, 공중에서 취했던 군사적 중단 조치를 복원하고 군사분계선에 더욱 강력한 무력과 신형무기를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한 군사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 여건 조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안전판이다. 평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현존하는 무력을 절대적으로 축소하거나 궁극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군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격적인 군축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군축이 난망할 경우, 군사력의 보유는 인정하되 군비경쟁을 자제하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군비통제가 평화유지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 9.19 합의는 방위비 감축 같은 구조적 조치는 없었지만, 군사적인 신뢰 구축 즉, 특정 군사 행위 금지, 완충지대 설치, 공세적 배치 해제 등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군비통제를 넘어 군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관계 개선이나 긴장 완화 의지, 군사력의 균형상태 유지, 남북 상호 간의 신뢰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적 관계 개선이나 긴장 완화 의지에 있어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 대 강 입장을 고수했다.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지만, 대화 여건 조성 없이 북한에 일방적 대화 복귀를 주문했다. 정부와 여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안보·국방정책의 핵심 가치로 설명해 왔다. 지난 4월 방미 이후 윤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상대 선의에 기대는 평화는 가짜 평화”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구상과 표현은 군사력의 균형상태 유지라는 군비통제 이행의 전제조건에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는 결국 남북 상호 간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9.19 군사합의 파기로 인해 북한은 이미 감시초소를 복원하고 중화기를 배치했으며, 또 다른 여러 조치를 예고했다. 이에 상응하는 한국의 대응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로 보아 남북한 군사 갈등의 수준을 9.19 합의 이전 수준보다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등으로 국제정세가 어수선한 와중에,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강 대 강 일색의 대응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대화 통로가 단절된 상태라서 더욱 위험하다. 정부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 마련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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