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환 편집국장(QRM·21)
최제환 편집국장(QRM·21)

 

언제부턴가 뜨거운 여름이 되면 횡단보도 양 끝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파라솔이 설치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 이용해 봤으리라. 그렇다면 파라솔 밑에서 당신이 더위를 피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은 얼마인가? 정답은 ‘무료’다. 당신이 파라솔 밑에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해도, 당신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파라솔 밑에 서 있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들이 막을 방법도 없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각각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 부르고, 두 가지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재화를 ‘공공재(public good)’라 정의한다.

공공재는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도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무임승차(free-riding)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내게는 공공재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혜택의 대상이 된다. 그 사람이 공공재를 실제 필요로 했는지 아닌지 파악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 공공재의 공급은 부족하기 마련이고, 결국 민간기업이 아닌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제공할 수밖에 없다.

공공재의 대표적인 예시에는 ‘국방(national defense)’이 있다. 국방도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동시에 지닌다. 국방 서비스는 한 사람이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소비량이 줄지 않는다. 또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이 혜택을 얻지 못하도록 배제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국방도 국가가 제공할 수밖에 없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징집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정책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편익(benefit)과 비용(cost)을 비교하곤 한다. 그렇다면 국방에서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은 얼마일까. 우리가 국방으로부터 얻는 편익은 ‘무한대’에 가깝다. 국방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방이 주는 편익이 확연히 드러난다. 만약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없다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편익과 달리 국방을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은 유한하다.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국방비뿐만 아니라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징집되는 병사들의 ‘경제적 비용(economic cost)’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경제적 비용은 기회비용*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한 병사의 경제적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해야 하는 육체적·정신적 노동’ 이외에도, ‘복무 기간 동안 다른 경험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나 그 시간 동안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을 더해야 한다.

편익에서 비용을 빼면 순편익(net benefit)을 구할 수 있다. 정책은 시행했을 때 발생하는 순편익이 클수록 좋다. 순편익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편익을 늘리는 것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방의 경우에는 편익이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순편익을 늘리려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써야 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국민을 충분히 잘 보호하고 있지만, 병사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상당히 부족하고 복무 환경은 열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한 양의 재화를 투자한다고 했을 때 국방력을 더 높이는 것보다는 병사들의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현재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은 너무나도 적다. 만약 병사가 군 복무 기간 동안 사회에서 주 52시간씩 최저시급을 받고 일한다면, 한 달에 약 220만 원을 벌 수 있다. 이에 비해 2023년 기준 이병의 월급은 60만 원, 일병은 68만 원, 상병은 80만 원, 병장은 100만 원에 그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당시 공약으로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31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병사에게 현금성 또는 현물로 지원했던 사업 예산 914억 원어치를 내년 예산안에서 제외했다. 병사 월급의 인상을 공약해 놓고 정작 병사 복지 예산은 삭감한 셈이다. 국가 전체의 국방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하는 병사들의 월급과 복지 예산을 저울질하는 정부의 이러한 행동은 월급 인상 정책이 정말 병사들이 부담하는 비용을 줄이고 국방의 순편익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그저 ‘보여주기식 정책’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모두가 누리는 국방을 제공하기 위해 큰 비용을 감수하는 병사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주어져야 할 ‘적절한 보상’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국방은 군대에 있는 ‘군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기회비용: 여러 대안 중 하나의 대안을 선택할 때 선택하지 않은 대안 중 가장 좋은 것, 즉 차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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