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권 보도부장(언홍영·17)
김대권 보도부장(언홍영·17)

 

나는 연세춘추 보도1부 기자다. 신촌캠 내 사안을 발굴해 신문을 발행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1부를 포함해 우리신문사에서 잘 보도하지 않는 사안이 있다. 바로 ‘캠퍼스 문제’다. 우리신문사에는 신촌캠 학생과 미래캠 학생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캠퍼스 문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기사를 쓰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연세춘추의 주 독자층인 신촌캠 구성원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지난 9월, 정기 연고전 전후로 연세대와 고려대의 지방캠 혐오 논란이 기성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캠퍼스 문제에 대한 기사는 쓰지 못했다. 이 문제는 연세춘추 기자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우리는 차별의 기제를 어릴 때부터 내면화했다. 사립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당시 교사 사이의 위계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이 많은 한 교사는 자기 연봉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수업 중에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열정 넘치던 젊은 기간제 교사들은 매년 바뀌었다. 학생들은 새해 새 학기 첫 수업 시간이 돼서야 “아, 그만두셨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의 잔인한 세상을 학교에서 처음 마주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세상이 마냥 천진난만했던 건 아니다. 우리 고등학교에는 ‘심화반’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소위 대학 실적을 잘 낼 것 같은 학생들을 모아 특별 훈련을 시켰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심화반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에 모여 공부했다. 선생님들이 심화반 학생만을 위해 특강을 열기도 했다. 대입 자기소개서, 면접도 밀착 코칭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연세대학교에 왔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더 가능성 있는 학생에게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냐고. 그렇다면 나는 내 노력만으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말할 수 있나.

우리나라 대학 입시판에 전해져 내려오는 불멸의 노랫말이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대학 입학 전에도 후에도 사람들은 학교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줄 세운다. 따라오는 차별은 덤이다. 이 노랫말을 불경처럼 외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입학 성적이, 들인 노력이 다르니까 당연히 다르게 대우받아야 하는 것 아니야?” 다들 공정한 룰 아래에서 온전히 노력만으로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수도권의 훌륭한 교육 인프라, 학교의 강력한 지원,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비싼 과외와 학원… 본인의 노력만으로 성공 신화를 써낸 양 우쭐대는 모습이 가끔은 당황스럽다.

가끔 어린이 주식 부자 뉴스를 본다. 초등학생인데 주식을 수백억 원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등바등 대학부터 졸업하고 취업해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데, 누구는 태어났더니 수백억 자산가가 돼 있다. 대기업 회장 자제들과는 경쟁할 일이 있겠냐마는, 나보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는 분명히 경쟁해야 할 텐데. ‘이게 공정한 걸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들도 어쩌면 피나는 노력을 하겠지만, 똑같이 노력하는 한 나와 그들의 격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평생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먼저 노력해야 그들을 조금이라도 따라잡지 않을까. 벌써 눈앞이 캄캄하다.

몇 년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의 ‘가짜 스펙 논란’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기성 언론들은 ‘공정 담론’이 시대정신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중 한 뉴스에는 “조민은 운 나쁘게 들킨 경우”라며 “다들 저렇게 스펙 쌓는다”는 인터뷰가 실렸다. 조민의 노력은 불법이자 편법이었고, 결정적으로 들통났기에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숨은 조민’들은 우리와 평생 경쟁하게 될 것이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스펙은 온전한 노력이, 그들과의 경쟁은 공정한 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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