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정 보도부장(정경경제·20)
곽민정 보도부장(정경경제·20)

 

192120231113. 연세춘추는 오늘로 1921번 발행을 거듭했다. 창간 이후 89년 동안 연세춘추 기자들은 발행에 대한 사명하나로 19백 번이 넘는 긴 제작에 늘 함께했다. 90년이 거의 다 돼가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신문사는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를 겪었다.

연세춘추가 한때는 전성기를 맞이해 잘 팔리는신문이었던 적이 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군부독재 시기에 연세춘추는 없어서 못 읽는 신문이었다. 그러나 연세춘추를 찾던 1980년대와 90년대 즈음의 독자들은 학내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고, 더 이상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나를 둘러싼 직접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런 데다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은 지면 신문으로서 갖는 연세춘추의 힘을 더 위태롭게 했다.

부기자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연세춘추는 인력 걱정 없는’, ‘견고한집단인 줄 알았다. 모두가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할 때, 연세춘추만큼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력난은 더 이상 다른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자가 줄어든 신문사에는 그 신문을 공급할 인력도 줄었다. 연세춘추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수록, 발행의 필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도 줄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실용적인 활동을 찾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후배 기수가 들어왔을 때, 그 수가 5명이라는 부장의 말을 듣고 당장 다음 학기 발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기자로서 학업과 취재, 제작을 병행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업무의 강도도 세다. 보도부를 기준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까지는 취재에, 목요일 자정 그리고 그 이후에는 초고 작성에,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강도 높은 밤샘 업무에 온전히 일주일을 갈아 넣어야 한다. 학업과 학교생활, 취업 준비, 여타 개인 일정들을 병행하면서 말이다. 다른 부서 사정도 비슷하다. 그렇게 총 5개의 부서, 2명의 국장, 6명의 부장과 12명의 기자가 힘겹게 제작에 임하고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동력은 기자가 가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영광과 타성에 젖은 빤한 말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다. 때로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연세춘추 기자들을, 그리고 우리의 발행을 비난하고 재단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수요도 없는 신문은 만들 필요가 없고,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보다 기능과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종이에 잉크로 남는 글의 힘을 믿는다. 연세춘추의 글은 연세 공동체의 중심에서 그 역사를 기록하고,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신문을 찾는 독자들이 계속 줄어 단 몇 명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 몇 명이 우리 신문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발행의 가치는 충분하다. 연세춘추 보도부 세미나 격려사에는 오래 지켜온 우리의 신념이 적혀 있다. ‘연세 역사의 초고’, ‘내가 쓰지 않으면 세상에 나오지 않을 기사’, ‘진실의 무게를 견뎌라.’

우리신문사 기자들은 힘든 제작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신념을 곧게 세워, 금요일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이 신념은 기사에 완벽을 더하려는 열정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된다. 토요일을 맞는 고요한 새벽에도 연세춘추 기자들의 타자 소리는 멎을 줄 모르고, 새벽의 침묵을 깨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가 밤을 일깨워 만든 16페이지의 신문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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