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아래 수능)이 시작된다. 이번 수능은 일명 킬러문항이라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한 채 치러진다. 올해 수능 응시자는 504588명으로, 전체의 32%159742명이 재수생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을 상회하는 89천여 명이 대학 학적을 가진 반수생으로 보인다. 역대 최고의 반수생 비율이다. 학원가에서는 지난 9월 모의평가부터 킬러문항 배제로 반수생 수험생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현재로서는 이러한 예측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입시 정책이 수능 중심으로부터, 입학 경로를 다양화한 수시 중심으로 바뀌면서 재수생 비율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지난 1996년 수능에서는 응시자의 36%가 졸업생이었지만, 이 비율은 2014년까지 20%로 감소했고. 2019년까지 20% 초반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정시 비중을 높이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2020년부터 이 감소세는 반전됐다. 2022년에는 28%로 올랐으며 올해는 31%까지 치솟았다. 재수생 비율이 30% 이상이었던 것은 1997년이 마지막이었다.

2022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입시제도 변화로 인해 재수 비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입시 불평등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한편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강세 지역에서는 오히려 그 비율이 증가했다. 이제 재수는 실패 이후 재도전이 허용되는 경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우위 점유를 위한 적극적인 선택 대상이 됐다. 일부 지역 및 계층 집단의 특권적 지위 재생산 전략으로서 그 성격이 바뀐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파행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대학교육과 문·이과 통합 및 정시 비율 확대 등의 정부 정책이 더해지고, 고조되는 사회적 불안, 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교육 산업이 여기에 어우러지면서 재수의 제2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 정부의 실체 없는 킬러문항 카르텔론은 이런 흐름을 저지하기보다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킬러문항 배제의 실제 효과를 가늠하기엔 시기상조지만, 효과가 있다면 입시를 둘러싼 제도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수험생의 불안감을 자극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의대와 상위권 대학 입학을 꿈꾸며 중도 이탈하는 대학생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수·반수의 증가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며,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재수와 반수에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 금전적 비용은 사회적 낭비다. 또한 최근 의료산업의 인력 수급 미스매치에서 보듯 우리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카르텔론과 같이 진지하지 않은 방식의 접근으로는 당분간 지속될 이런 경향을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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