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진 보도부장(독문·21)
장호진 보도부장(독문·21)

 

학생 민주화운동이 시들해진 이후부터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학생사회가 무너진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한참 전에 무너졌다는 학생사회가 오늘도 조금씩 더 바스러지고 있음을 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침체했던 학생 ‘자치’는 대면 학사로 전환됨에 따라 오히려 되살아났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단(아래 총학 비대위원장단), 단과대와 총동아리연합회 회장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화요일 새벽까지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자리를 지킨다. 약 80명의 학생대표자가 모이는 확대운영위원회(아래 확운위)도 한 번 열리면 5시간이 훌쩍 넘도록 논의가 진행된다. 그 긴 시간 동안 학생대표자들은 쉴 새 없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든다. 

학생대표자들의 충실한 희생에도 연세 학생사회는 왜 계속 무너지고 있을까.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들 한다. 연세사회는 대한민국 사회를 쏙 빼닮았다. 그 그림자까지도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정치 의제들은 소모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논의라기보다는 상대 정당이 찬성하면 일단 반대하고 보는 식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 ‘정치판’이 연세사회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 2023학년도 1학기, 일련의 사태로 우리대학교 전체를 대표해야 할 학생대표자 자리가 3주 가량 궐위된 일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궐위 사태가 끝났지만 연세 학생사회는 안정되기는커녕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연세 학생사회가 둘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두 차례 열린 비대위 설립위원회에서 총학 비대위원장단 후보의 정당성 논의가 뜨거웠다.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해당 후보자들이 총학 비대위원장단으로 선출됐고, 비대위를 꾸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대위는 9월 11일, 2023학년도 2학기의 마지막 확운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선관위) 개편’을 골자로 하는 선거시행세칙 개정안을 발제했다. 안건에 대한 지적도, 우려도 많았고, 장시간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 

해당 안건들에 대한 판단은 이 글에서는 접어두고자 한다. 총학 비대위원장단 선출 당시 후보자에 대해 자격 문제를 제기했던 인원과, 확운위장에서 총학 비대위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원이 교묘하게 겹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단 이날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학기 중운위와 확운위 등에서 일부 학생대표자들은 무리를 이루고,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연세사회의 공론장에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등장한 것이다.

몇 년 전 학생사회에서 활동하던 ‘고인물’들까지도 한쪽 편에 붙어 합세했다. 이 세력 다툼이 현(現) 학생대표자에 국한되지 않고, 전(前) 학생대표자들과 차기 학생대표자들 사이에서 공유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심지어 학생사회의 의제는 방대한데, 주요 학생대표자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어 폐쇄적이기까지 하다. 중선관위, 비대위 설립위원회, 총학 법제위원회 등 여러 주요 의결 기구가 중운위원을 필두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누군가를 비판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두 쪽 난 학생사회의 한가운데에 있으면 알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명명백백히 잘못했고, 어느 한쪽이 의심할 바 없이 옳아서 학생사회가 갈라진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11일과 25일 있었던 확운위장에서는 또 다른 위기가 포착되기도 했다. 중선관위 개편의 안 논의 도중 일부 학생대표자가 의결 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함이라며 회의장을 나왔다. 막차 시간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라,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의사표시’라는 이유에서였다. 선거철마다 뽑을 후보가 없다며 투표권을 포기하는 이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학생대표자의 의결권 포기가 의사표시일 수 있을까. 애들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기성세대가 꾸린 대한민국 정치판의 어두운 그림자를 연세사회가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생사회의 위기다.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을 두고 있겠지만, 과정에 얽매여 정작 방향은 찾지 못했다. 연세 학생사회의 모습도 그렇다. 학생대표자들이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은 확실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그늘에 먹혀가는 것이 연세 학생사회가 맞은 새로운 위기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