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은행권의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신용도가 낮은 경제주체의 불법사금융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가속된 첨단기술 진화와 그에 따른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의 이면에는 소득과 재산 분배의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있다. 이에 더해 지난 2020년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의 충격은 소득과 재산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소극적인 정부의 재정정책 속에 코로나19의 사회적 비용은 저소득층과 소상공인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됐고, 소득과 재산 분배의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GDP 대비 정부부채의 비중은 가장 낮고 가계부채의 비중은 가장 높은 구조가 형성됐다. 

한국과 달리 공격적인 확대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시행했던 미국은 전염병의 위기가 진정되기 시작한 2022년 초부터 물가를 잡고 달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긴축통화정책으로 급선회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불과 1년여의 기간 동안 기준금리를 0.25%에서 5.25%로 급상승시켰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또한 국제금융자금의 이탈을 막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같은 기간 기준금리를 0.5%에서 3.5%로 상승시켰다. 하지만 최근 미국 중앙은행의 고금리 기조가 2024년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자 외국자본은 금리가 낮은 한국을 본격적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민생고를 심화시키고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악순환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 문제는 재정 준칙이라는 허상에 매달려 있는 기획재정부가 재정정책의 방향을 수정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방만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중요한 원칙이지만, 그 자체가 재정 운영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 그리고 써야 할 곳과 쓰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이 손발이 묶인 체 위기 상황을 맞도록 방치하는 것은 재정을 무분별하고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지난 1997년 외환 금융위기 때 우리는 전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때 정부는 공적 자금을 조성해 쓰러져 가는 우량기업들을 선별적으로 살려낸 바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의 사회적 비용을 과도하게 짊어진 취약 계층과 소상공인들이 금융 사각지대에 내몰리지 않도록, 여유 있는 사람과 기업으로부터 세수를 확보하고 국채를 발행해 지원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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