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사회부장(행정·21)
김혜진 사회부장(행정·21)

 

우리나라는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 취지는 국가가 저소득층에게 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제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말 수급자 수는 236만 명으로, 전 국민의 4%가량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평가받는 것과 별개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득인정액, 부양의무자 조건 등 수급권자 판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해묵은 논쟁거리다. 기준은 좀처럼 변경되지 않은 채 테두리 안에 포섭되지 못한 이들의 어려움이 매해 보도되며 비난은 더욱 거세져 왔다.

제도 안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인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궁극적 목표인 자활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최초 수급판정 이후 지속현황’에 따르면, 전체 수급자 중 100만여 명이 4년 이상 수급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라는 단어가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신분’에 붙는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탈수급 했다가 다시 수급자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같은 자료에서 5년 안에 9만여 명의 탈수급자가 수급자 신분으로 돌아갔다. 수급자들이 일찌감치 탈수급을 포기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7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7.4%가 ‘탈수급하기 어려울 것’이라 응답했다.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지급 방식에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충 급여 방식’을 취한다.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수입을 국가가 보충해 주기에 수급자의 수입이 늘어나면 지급받는 급여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가령 근로소득이 60만 원인 1인 가구는 생계급여로 44만 원을 받는다. 여기서 근로소득이 20만 원 늘어나 80만 원이 되면, 생계급여는 30만 원으로 준다. 일해도 늘어나는 수입은 고작 6만 원이다. 열심히 일해 수급자 신분에서 벗어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주거비, 식비, 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일할수록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복지’,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저하하는 복지’라는 오명이 붙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중 4년 이상 수급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35만 명가량이 만25세~59세라는 점도 주목해봐야 한다. 이들은 수급자 신분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소득이 잡히지 않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쪼개기 알바’를 택해 주휴수당을 포기한다. 일할수록 손해인 데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아니지만, 수급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일부 금액을 근로소득에서 공제해주기도 한다. 가령 수급자가 대학생이거나 24세 이하인 경우, 월 40만 원까지는 근로소득에 반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공제금액도 물가상승률, 실질적인 소비 경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신촌 인근 대학가 월세만 해도 40만 원을 훨씬 웃도는 현실이다 보니,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거셀 수밖에 없다.

이 순간에도, 복지 사각지대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일, 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의식을 잃은 미등록 아동과 함께 40대 여성이 생활고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모자는 보건복지부에서 선정된 위기가구였으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아니었다. 수급자 선정 조건과 수급 방식 전반에 재정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