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언홍영·17)
이찬희(언홍영·17)

 

 

시간은 금요일 오후 6시 언저리. 익숙한 신촌에서 이유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맞아, 이 시간대에 연대 앞을 지나면 인간의 파도에 쉽게 휩쓸렸지. 그렇지만 정문 앞 횡단보도를 지나 굴다리 아래 좁은 길이 평소보다 답답하다.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 밀려 나오는 사람들을 돌파한다. 의문을 안고 인파를 통과하려는 찰나였다. 어쩐 일인지 대학약국과 올리브영 사이 좁은 길이 텅 비어있다. 평소였다면 자동차들과 눈치 싸움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가득했을 텐데.

앞만 보던 시야를 위로 돌려본다. 아 신호등이 생겼구나. 안전을 위해 신호등이 설치된 건 맞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봐왔던 신촌의 모습과 사뭇 다른 지금의 상황에선 신호등이 반갑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빨간불이 숨통을 조여오는 듯하다.

이어폰에 흐르던 음악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로 바꿔봤다. 거닐던 연세로는 우주로 바뀐다. 그리고 필자는 노래 속 주인공인 톰 소령이 된다. 우주미아가 되어버린. 

필자 역시 연세로의 미아가 된다. 길을 잃어 몽롱하던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는 옆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금요일 이 시간, 연세로에 차가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색해서이다. 여전히, 이 우주가, 아니 연세로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다. ‘Oddity’가 뜻하는 괴이함을 나의 터전에서 느꼈기 때문일까. 

그나마 익숙한 빨간 잠망경 쪽으로 눈을 돌려봤다. 버스킹이 한창이다. 청춘의 목소리가 연세로의 미아를 다시 제 곳으로 끌어들인다. 잠시 이어폰을 빼고 귀를 기울여본다. 반가운 신촌의 모습을 보니 익숙한 기억이 드는 게 편안해진다. 

하지만 이 감정도 잠시, 다시 신촌은 괴이해진다. 지금 저 차도에서도 시끄러운 소리와 답답한 기체가 아닌, 청춘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매연에 목이 아니라 귀가 답답해져 다시 이어폰을 꽂는다. 마음이 다분히 혼란스럽다. 우리는 우리를 표현하고 자유롭게 거닐 공간을 빼앗겼다. 휴대폰 화면에 적힌 「Space oddity」, 더 이상 ‘Space’가 우주로 해석되지 않는다. 공간 이상, 이 말보다 지금 연세로에 잘 어울리는 해석이 있을까? 

연세로의 주말은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해 일요일 오전 12시 언저리까지 지속된다. 연세로가 가진 공간성과 주말의 시간성으로 이뤄진 세상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끌어안았다.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춤을 잘 추건 못 추건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연세로로 나왔었다. 같은 맥락에서, ‘신촌 뉴진스 할배’라고 불리는 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삶의 역경을 딛고 음악으로, 신촌에서 힘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연세로에서 청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청춘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 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노래가 끝났다. 이어폰을 뺀다. 우주미아가 된 톰 소령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것 같다. 연세로의 미아 역시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곳이 없는 미아는 어떻게든 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인도는 여전히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정신없이 치이며 길을 뚫어낸다. 혼란한 상황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차도를 바라보았다. 차들은 연세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 그저 빨리 다른 목적지로 가고 싶어 보인다. 이상하다, 분명 이 길에 차가 다니게 한 이유에는 신촌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자는 것이 포함됐었다.

옆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덧 신촌역이 보인다. 가만히 서서 길의 반대편 끝을 바라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신촌역 안으로 들어가려 행진을 이루는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평소 같았으면 넓디넓은 이 공간에 머물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봄을 이뤘을 텐데. 그렇다. 연세로의 반을 갈라버린 차들의 행렬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도 더 이상 신촌에 머물지 않게 했다. 눈길 한 번 거리에 주지 않는 차들과 사람들은 도시의 남은 마지막 온기까지 뺏어가는 듯했다.

짧은 여행을 마치며 연세로는 공간 이상 상태라고 확신했다. 사람을 이곳에 더 머물게 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연세로를 환승역 정도의 역할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려 하는 공간들도 역사의 저편으로 저물고 있다. 언젠가 어떤 미래에는 우리가 알던 연세로의 모습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이상하고 어색한 공간에서 내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어쩔 수 없지만 적응해야겠지. 그런데도 나는 이 자리에서 다른 이상(理想)을 품어본다. 언젠간 다시 연세로가 팽창하여 우리 모두의 우주가 될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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