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편집국장(국제관계·18)
허준 편집국장(국제관계·18)

 

지난 5월 31일, 고요한 새벽 공기를 날카롭게 찢어내는 경보에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사위가 밝아오던 새벽, 경보의 내용은 평화로운 일상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특별시]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참이나 문자메시지를 뻔히 바라봤다. 잠들기 전까지 만해도 평소와 다름없던 무수한 날들 중 하나가 저물었고, 급히 창문을 열어 확인한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공포감이 들기도 전, 해당 문자가 진실인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뒤덮었다. ‘대피 준비를 위한 경보라면 전시에 돌입하는 상황인가’ 곧 있을 예비군 준비를 위해 걸어둔 군복이 눈에 들어오며 당혹감은 점차 불안감으로 번졌다. 

우선은 주무시고 계신 부모님을 깨워야하나 생각을 했고, 군복을 입어야 하나, 무엇을 챙겨야하나. 복무기간을 포함해 십 수 년 간 배워온 지침들은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느낀 막막함. 문자를 쳐다보며 고민한 끝에 발견한 가장 심각한 문제.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것인지, 이 상황이 왜 생긴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고민을 거듭하는 중에도 컨트롤타워의 후속 안내는 없었다. 그저 대피 준비를 명령한 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도 알려주지 않은 야속한 문자는 고요한 새벽, 흐르는 시간을 온전히 나의 불안으로 채웠다. 네이버는 먹통이었다. 접속되는 어플을 뒤져 확인한 결과 북한이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는 속보가 나와 있었다.

사실 북한은 지난 5월 29일, 국제해사기구(IMO)에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공개 4일 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3차 발사에 성공함에 따라 급히 발사를 추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북한의 첫 정찰 위성 초읽기에 조명을 비췄다. 다만, 이번 위급재난 문자를 보니 우리정부는 이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행정안전부] 06:41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받은 문자는 맥이 탁 풀리는 내용이었다. 전시 돌입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오발령’이라는 황당한 단어에 대한 분노가 교차했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우리군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인천시 강화군 백령면과 대청면에 경계경보를 알렸다.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는 “현재 시각, 백령면·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하라는 지령을 전파했다. 서울시는 백령면과 대청면 내 미수신 지역을 오독해 앞선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다만 행정안전부는 일관적으로 보내던 미수신 지역을 잘못 해석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행정안전부와 서울특별시는 유사시에 시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던가.

서울시가 발송한 위급재난문자는 오발령이라는 단어를 배제하고서도 행정안전부의 지령을 수령한 9분 뒤 발송됐다는 점이 지적됐다. 6시 32분에 서울지역 경계경보를 발령했음에도 실제 시민들에게 위급재난문자가 도달한 시각은 6시 41분이었다. 1분 1초가 중요한 실제 상황에서 정보전달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9분의 시간 이면에는 행정안전부의 안일한 태도가 있다. 서울시의 확인 전화에도 행정안전부는 2분여간 응답하지 않아 정보전달에 애로사항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31일, 서울시청 브리핑에서 오세훈 시장은 “현장 실무자의 과잉 대응일 수는 있으나 오발령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안전에는 타협 없고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적극행정을 실천한 것이지, 결코 실수라고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실무자 간의 업무 역량에 따라 이와 같은 ‘헤프닝’이 발생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불필요한 위급재난문자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구체적인 지침은 안내하지도 못했으며, 정부 부처 간의 소통조차 미흡한 모습은 적극행정이라고 하기에는 어불성설이다. 그저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헤프닝’으로 치부해 버린 사건을 옆 나라 일본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본 방송국 NHK에 따르면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직후 불과 1분 만에 전국순시경보시스템(경보)을 오키나와현에 발령했다. 서울시의 위급재난문자와는 달리 경보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대피방법’을 설명했다. 무엇 때문에 재난 문자가 발송됐는지, 시민들의 대피 및 행동요령조차 없었던 그날의 어설픈 문자와 비교된다. 

단순한 ‘헤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뼈아픈 실수이자 부끄러운 아마추어 행정의 실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부’에 필요한 자세는 책임감이다. 서울시와 행정안전부는 각각의 미흡한 점을 포장하고,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고 있다. 책임 회피성 발언보다는 부족했던, 미비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말이다. 그 책임은 장관이나 시장의 사과나 변명이 아닌,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발전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날의 일로 또 다른 경보가 발령될 경우 시민들이 이를 실제상황으로 인지할지, 혹은 또 다른 오발령으로 치부해버릴지 우려된다. 휴전협정 이후 73년, 안보적 위협이 종식되지 못한 채 우리의 일상에 도사리는 상황. 종전이 오기 전까지는 물론이고 시민의 소중한 일상을 위해 정부는 철저한 준비와 올바른 판단으로 책임의 무게를 다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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