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안 매거진부장(EIC·18)
서지안 매거진부장(EIC·18)

 

지난 2022년 11월,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된 그해 겨울은 내게 여름 못지않게 뜨거웠다. 새빨간 붉은 빛의 야생마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푸른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정적인 삶을 살아왔던 내 눈에, 그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일정이었다. 우루과이전 무승부, 아쉬운 가나전 패배까지. 그럼에도 나의 영웅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흘린 눈물을 딛고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던 선수들은 뒷심을 발휘해 끝까지 포르투갈을 상대했다. 지난 2006년 이후로 꾸준히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경우의 수’ 역시 다시금 등장했다. 나와 우리나라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닿아서일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했던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경기 결과에 따른 국민 여론이다. 이전까지 축구에 관심이 없었던 나도 부정적인 결과에 따른 팬들의 만행들을 매체를 통해 종종 접할 수 있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호박엿이,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계란이 귀국한 선수단을 향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선수의 SNS 계정은 익명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차지했다. 다만 카타르에서 돌아온 선수단에게는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4-1로 패했던 경기 결과와 달리 FIFA랭킹 1위 브라질을 상대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돌아온 박수갈채에 사뭇 얼떨떨해 보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다. 승패라는 결과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에서 비롯된 과정이 중요해졌다. 나 역시도 고통과 노력의 과정을 보낸 우리의 영웅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지만, 스포츠 문화에 산재된 훌리건에게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심판 죽어라! 심판 죽어라!
 심판 죽어라!”
“매수했냐! 매수했냐!”

 

오래전부터 인기였던 스포츠 종목인 축구는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그 인기는 K-리그 흥행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마냥 긍정적인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스미디어에서 포스트미디어로 전환되는 시대,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고 넓게 퍼져간다. 각종 플랫폼을 통한 여론의 재형성과 여론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축구 문화 테두리 밖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난 매거진 80호 제작 당시 취재를 하러 갔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선 과격한 태클을 제지하지 않는 심판을 향해 관중들이 소리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임에도 5월 5일, 어린이날 특수를 맞아 경기장에서 가족행사를 보내던 이들에게 봉변 같은 일이었다.

스포츠문화를 대변해야 할 서포터즈들은 응원이라는 본분을 잊은 채 심판과 상대방을 비난했다. 가시화된 응원문화와 더불어 관람문화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본인들이 그 문화를 후퇴시키고 있었다. 심지어는 경기가 끝난 직후 경기장을 떠나는 상대 팀과 그 팬덤의 뒷모습에도 손가락질을 하며 그들만의 응원 문화에 도취해 있었다. 끔찍한 현장의 모습들은 플랫폼을 통해 여과없이 중계됐다. 

혹자는 이런 응원문화가 오히려 경쟁심리를 부추기고 선수들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팬덤 간의 응원이 경기를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응원·관람문화의 발전을 위해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선제돼야 한다. 외설적인 언어와 비속어는 축구 문화 테두리를 허무는 방법이 아닌 옭아매는 방법이다. 더욱이 과격한 응원 이면에는 결과에 집착하는 스포츠도박이 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응원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경기장에서도 선수가 아닌 핸드폰을 보며 마음을 졸이던 사람들이 있던 만큼 관람문화를 훼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관람문화의 훼손은 곧 나의 영웅들을 모욕하는 인간군상을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 3월 28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축구인 100명 사면 단행’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결국은?

 

스포츠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의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그 이유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린 진정으로 선수를 위하며 팬덤을 넘어 건전한 축구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스포츠와 구단, 선수가 과연 어떤 존재인 것인지, 우리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두 달이라는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이번년도 K-리그1은 평균 1만 1천305명의 관중 수를 기록하며 작년 대비 2배 넘게 흥행을 유지하고 있다. 월드컵과 더불어 유튜브를 통해 입문하게 된 팬들까지. 사랑하는 팀을 치열하게 응원하며 나의 영웅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느낀다는 것. 쉴 새 없는 일상의 루틴에 지쳐만 가는 마음이 치유되는, 무료하던 일상에 단비가 내린 듯 팬들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다만 아쉬운 마음에 한소리, 표현이 서툰 팬의 한마디, 비난의 한마디가 모두 모여 악플이라는 비수로 선수의 가슴에 꽂힌다. 건강한 응원·관람문화를 위해 상대를 위한 존중과 선수들을 향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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