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보도부장(인예철학/사회·19)
최은수 보도부장(인예철학/사회·19)

 

5월은 제법 이상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큰 줄기 아래,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그 이름도 참 따뜻한 날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생명이 소생하다 못해 조금은 더운 바람까지 부는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다 보면, 문득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닌가 선득한 기분이 들곤 한다.

43년 전의 그날도, 틀림없이 따사로웠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오늘은 우리의 날이라며 5월 내내 거리를 쏘다녔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달아드릴 카네이션을 전하러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5월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 연락 한 통 전하기 빠듯한 지금보다도, 더 정답고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집 밖으로, 거리로 향했을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를 남의 일에도 그렇게 쏟아져 나온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무엇을 지키려 그곳에서 그들이 스러져 갔을지, 
헤아려 본 적 있을까? 

 

많은 이들이 그렇듯, 처음으로 5월의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배워서’였다. 정규교육과정의 가르침대로 지나온 시간의 일부로 배웠음에도,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교과서 속 사진이 너무 사실적이었는지. 죽음이라는 개념이 막연하게 두려웠기 때문인지. 군인이 시민을 죽였다는 이상한 사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혼재됐기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모호하다. 한 가지 분명한 기억은 학교가 파하고 그길로 곧장 집에 돌아와 검색을 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보여준 광주는 내가 아는 곳이 아니었다. 광주는 우리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이고, 명절마다 성묘를 하러 가는 곳이고, 아빠의 사촌형제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떠난 땅 위에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매일을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땐 너무 어려서 간과한 것이 많았던 탓이다. 당숙은 그날 정말로 누군가를 잃었고,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으며, 광주에 남은 모든 이들은 그날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탓이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도시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中

 

국가가 국민의 몸에 박아넣은 총알, 길거리에 늘어진 낯익은 이의 형상. 기억은 씻을 수 없는 흉터를 광주에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남은 이들은 스스로 그 상처를 지워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광주는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끝없이 저격당했기 때문이다. 그날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도 미루기 바쁜 책임과 비열한 외면 속에서 남은 이들의 가슴은 또다시 멍들고 있다. 그 열흘의 봄을 감히 이해하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나 떠난 이들이 온몸으로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지 않고서는, 여전히 광주를 겨눈 총구는 쉽게 거둬지지 않을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아이부터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겨눈 계엄군의 총이 2023년 현재, 또 다른 총탄이 돼 더 이상 광주를 향하지 않도록, 선명한 기억을 남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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