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신뢰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아닌, 덜 불신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투표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곤 한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과거의 발언을 뒤집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수시로 하다 보니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커질 뿐이다.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특검’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을 강행 처리했다. 그런데 이 특검 법안과 함께 간호법과 방송법 등도 함께 강행 처리되었다. 간호사들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대한간호협회에서는 간호법이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의 이익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은 의료법 체계를 무너뜨린다며 반대하고 있다.

간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법 제정을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다른 단체에서는 줄곧 법안 처리를 반대해 왔으나 지난 27일에 법안이 강행 처리된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면 이익단체 간 합의가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국회나 정부가 나서서 합의를 중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표를 얻기 위해 오해를 사기 쉬운 언행을 남긴 정치인들이 있었고,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이해관계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간협 입장을 옹호하며 법안을 통과시켰고, 국민의힘은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했다. 대한의사협회장 등 의료단체 대표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이날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낮은 신뢰도를 가지게 된 이유를 이익단체에서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간호법 폐기를 주장하는 단체의 주장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을 시급히 통과시키는 과정은 정치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대립과 갈등을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 가는 등 입법과정과 운영의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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