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재 주 최대 52시간인 노동 시간을 최대 80.5시간(주7일 기준)으로 늘리는 내용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개편안에 따르면 주6일 기준 노동 시간은 최대 69시간으로 늘어난다. 대신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해 일이 적은 주에는 근로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근무하고, 일이 없을 땐 충분히 쉬라는 취지다. 그럼에도 이 개편안은 여러 측면에서 미래지향적이기보다 시대 역행적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의 장시간 노동 감소는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문제의식이었고 실제로 근로시간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감소해왔다. 근로시간만 감소해 온 것이 아니라 기업 및 산업, 사회 전반 구조와 문화가 이에 맞춰 변화해왔다. 따라서 노동 시간을 늘리려는 시도는 사회 전반의 변화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 존립의 가장 심각한 도전인 저출생·고령화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키는 조치라는 점에서 시대 역행적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낮은 출생률의 기저에는 결혼과 양육을 통해 가정을 유지하는 것을 극히 어렵게 만드는 장시간 노동이 있다. 최대 69시간의 집중 노동의 반복은 인구 전반의 건강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고령화 시대의 큰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오게 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미래 세대의 요구보다 기성세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시대 역행적이다. 장시간 노동에 대해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청년 세대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늘려 가족을 부양하도록 내몰리는 중·장년 세대 노동자들의 것에 가깝다. 최근 개편안에 대해 ‘MZ세대’의 반대가 심하다는 소식에 대통령이 부랴부랴 60시간 상한을 고려해 재검토하라는 뒷북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퇴행성이 되돌려지지는 않는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과로에 시달리던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까 겁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자유롭게 쉬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정부 설명에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반응이 다수다. 노동계 역시 비판적이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선택권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장시간 집중 노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휴식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방안이며 정부는 “노동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의 우려가 미반영된 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일사천리 추진된 정치적 과정 역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수준에 비춰볼 때 시대 역행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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