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예진 보도부장(경영/생디·20)
나예진 보도부장(경영/생디·20)

 

당신은 연인, 연인의 이성친구 A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있다. A가 깻잎을 먹으려고 하지만 깻잎 여러 장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상황. 이때 연인이 A의 깻잎을 떼어 준다. 당신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지난 2021년 말부터 유행하고 있는 ‘깻잎 논쟁’의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연인이라면,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애정의 상실을 느낄 만한 행위를 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샘이 많았던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답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인 연애관을 떠나 깻잎 논쟁을 알게 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깻잎 논쟁을 통해 알 수 있는 각박한 현실의 면모와 그 속에서 변한 내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임을 전제한다. 능력, 외모 등 물질적인 것 모두 상대적인 우위가 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깻잎 논쟁은 비물질적인 가치로도 우위가 생길 수 있다는 위험한 메시지를 전한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보다 연인을 가까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소한 친절에서까지 권력관계를 생각하고 경쟁해야만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깻잎논쟁은 호의의 자기검열이 당연시되는 사회라는 점을 함의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베푼 친절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로 다가갈 수 있으며, 그러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자는 것은 이상주의로 치부된다. 

이처럼 관계지향적이지만 파괴적인 자기검열은, 혐오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처음 깻잎 논쟁을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깻잎을 떼어주는 행위는 이성적인 호감 없이도 행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됐다. 그러나 깻잎 논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질투의 감정이 전염됐다. 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내 자신이 잘못됐다고 느끼기도 했다. 깻잎 논쟁의 영향으로,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옳은’ 것이라고 피력하는 세력도 많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깻잎 논쟁의 해법은 단 한 가지이다. 모두가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다. 연인은 A에게 ‘적당한’ 호의만을 베풀고, 나 또한 그들을 ‘적당히’ 감시한다. 아무도 위계관계를 느낄 수 없고 모두가 같은 무미건조함을 느끼는 상황,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신문사와 의도치 않게 4학기를 함께 보내며 연세 학생사회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했다. 그러면서 학생사회 속 깻잎 논쟁에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다. 특정 집단의 권리를 위해 쓰인 글은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았으며, 소수자를 위해 쓰인 글은 다른 소수자에게 폭력으로 가닿았다. 그리고 우리신문사 내외에서 겪었던 인간관계 문제들.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무서워졌고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빠져갔다. 지나친 호의를 베푸는 것은 폭력이다. 내 진짜 생각을 차치한 채,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미적지근한 타협안에 매몰된 때였다. 반대로 나 또한 타인을 끊임없이 검열했다. 학생사회 기구들의 액션 하나하나, 구성원들의 말 한마디를 곱씹으며 그들의 쓸데없는 호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중립을 지킬수록 갈등은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마다 맞춤형으로 가공된 정보를 전달했다. 그 결과 나를 중심으로 그들은 소통의 문제를 겪었고, 갈등은 심각해져갔다. 중립성이 꼭 옳은 것만이 아님을 느꼈다. 

많은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복잡한 인간관계로 얽혀 있는 세상에서, 자기검열과 거리를 두고 내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 결국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호의를 베풀고, 이를 설득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각박한 현대 사회, 소신에 맞게 옆자리 그 누구에게라도 깻잎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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