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우 총무국장(보건행정·18)
안태우 총무국장(보건행정·18)

 

‘내 인생 반 고비에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단테, 『신곡-지옥』

 

가을, 봄, 가을, 봄 그리고 가을, 우리신문사에 재직하는 동안 교정은 무수한 변화의 교차점이었다. 응원곡 ‘파란’ 가사에 기대어 파란이 지워진 교정을 주제로 수습기자 로테이션 과제를 수행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졸업 전 우리 교정은 푸른 청춘의 열기가 가득해졌다.

‘그 어떤 것도 우리가 당연하게 취할 것이란 없다’라는 참으로 진정어린 이치를, 지금처럼 가슴으로 짙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아카라카, 대동제, 연고전 등 대면 행사로 교정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그것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매 학기 코로나19가 사그라질 기대감에 부푼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리신문사 제작방식도 마찬가지다. 내 입사 기수인 126기는 각자의 임기를 마쳐서야 처음으로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등록 68주년을 맞은 우리신문사는 137년 연세 역사의 중턱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아니 위기 속에 있다. 전국적인 교지 단체 폐간 위기를 넘기고서도 남았던 춘추는 매번 조회수와 줄어드는 예산(자율경비 납부 저조)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기사를 작성하는데도 코로나19는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의 기로에서 대면 평가회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비대면 방식으로 부활했다. 블렌딩 방식을 차용하기도 했다. 

우리신문사는 ‘읽히기 위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구성원들은 아이템을 발굴하고 시의템을 포착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조회수 하락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당연하다는 변명만 남긴채 해결은 요원했다. 코로나19라서, 「연세춘추」의 필요성이 덜 느껴져서, 존재를 몰라서 등 매번 비슷한 굴레에 갇힐 뿐이었다. ‘왜 읽혀야 할지’ ‘어떻게 읽혀야 할지’, 진심으로 자성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내봤는지 통렬한 자아성찰을 하기도 했다. 

총무국장 재직 동안 이 문제의식이 임기 내내 나를 괴롭혔다. 보도, 사회, 사진·영상, 매거진이 학생기자의 시선을 엮는 곳이라면 여론·칼럼면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엮는 공간이다. 타 학보사들의 같은 면을 찾아 읽으며 코너의 변화부터 사설 주제의 변화까지 전임 국장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운이 좋게도 의학회 SEVERANCE ARMS로부터 연재칼럼 협업 요청이 왔고, 지면의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코너 신설을 기대하고 있다. 조직 관리자로서 사진·영상부 인력 개편도 해냈다. 다음 학기부터는 영상 컨텐츠 부문에서도 우리신문사의 역량은 한껏 높아지리라 기대한다. 춘추의 접근성을 낮추는 방법을 깨닫기도 했다. 연돌이와 세순이, 만평 등 이미지화된 작업물들의 조회수가 글 기사보다 높다는 점을 알게 됐다. 아직은 준비 단계지만 1년 프로젝트로 연세춘추의 만평집 발간과 만평 전시회를 기획해 학우들 가까이 다가간다면 우리신문에 접근하는데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정답을 찾지 못한 채 2022학년도는 1학기는 보도부장이라는 직책으로 시작했다. 환희의 순간도 있었다. 글감을 고르고 취재를 하던 취재기자를 벗어나 글을 만지고, 레이아웃을 짜는 편집자라는 나의 역할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편집으로 내가 새롭게 기획해 새로운 지면을 꾸려가는 일은 즐거웠지만 매번 가슴 한 켠으로 발행되지 못한 아이템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춘추는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의 역량에 기대기에 바쁘다. 그때 그때 데스크진, 기자 구성원의 역량에 따라 춘추의 역량도 강풍 앞 나뭇가지처럼 흔들린다. 시스템 중심의 조직 재정비를 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쳐야 하지만 이 자리를 맡을 후임자가 언젠가 체계적인 춘추를 만드리라 믿는다. 

나는 관리자로서 부족한 사람임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사람을 대하는데 미숙했던 나는 매번 논리적이고 계량적인 대화로만 구성원들을 내몰았다. 매 순간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들이 쌓이고 모여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를 그려 넣기도 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당연히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 상처를 받았겠지‘라며 후회하는 순간도 많았다. 기사의 질에 철저하게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너희는 여기까지 와야해‘라며 상대 그대로 존중하지 못했던 태도도 쓰라리기만 하다.

결국 춘추가 처한 위기도, 춘추가 지나가고 있는 위기라는 안개 속도, 변하가는 모습들도, 매 순간 선택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쌓인 결과물이다. 서글픈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 그때 개체들의 의지가 모여 전체의 흐름을 만드는 것, 원하는 모습 그대로 만들어 나가기 보다 변한 모습을 그대로 떳떳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당연한 것은 없다. 

어쩌면 춘추가 변하는 것도 아직 연세 역사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연세춘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웠다. 여기서 만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듣는다. 춘추는 내가 연세인으로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곳이라서 더 소중하고 감사했다. 다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세월 흘러가는 대로 변해가는 까닭은 젊은 춘추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변화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울 뿐이다. 쓸쓸해진 나는 이 곳에서 젊은 마음을 간직한 채 춘추를 떠난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너도 나도 변했으니까
모두 변해가는 모습에 너도나도 변한거야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 
- 봄여름가을겨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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