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안녕하십니까누군가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 행인들을 향해 인사한다. 인사를 건넨 이는 송기배(69)씨다. 그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이슈 판매원(아래 빅판)이다. 지난 17, 기자는 송씨의 빅이슈 판매 과정을 좇았다.

 

빅이슈를 파는 이들
소위 빅판과의 동행기

 

빅이슈는 지난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송씨가 팔고 있는 빅이슈는 2010년 설립된 사단법인 빅이슈코리아에서 발행하는 잡지다.

 

▶▶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 판매 준비를 하는 빅판 송기배(69)씨
▶▶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 판매 준비를 하는 빅판 송기배(69)씨

 

오후 3시 송씨는 빅이슈 판매를 시작한다. 지난 17, 송씨는 예정된 판매 시간보다 30분 일찍 신촌역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빅이슈를 판매할 채비를 다 마쳤다며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송씨는 판매 준비 과정을 설명하며 우둘투둘한 지하철역 벽면에 당일 판매할 잡지 여러 권을 세워뒀다. 빅이슈에 대한 설명이 얼핏 보이는 홍보 문구도 잡지 옆에 함께 놓여 있었다.

 

▶▶ 송씨가 판매 준비를 위해 잡지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 송씨가 판매 준비를 위해 잡지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빅판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빅이슈를 판매한다. 이들이 하루에 판매하는 잡지는 10권 정도다. 이날은 8권의 잡지를 팔았다. 송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가 안 될 땐 세 시간에 한 권도 안 팔려요. 정말 안 팔릴 땐 오후 9시까지 일하기도 해요.”

 

▶▶ 송씨가 “안녕하십니까, 빅이슈입니다”를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송씨가 “안녕하십니까, 빅이슈입니다”를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빅판은 온종일 서서 사람들을 응대한다. 송씨는 일하는 도중 허리 뒤편을 만지작거렸다. 허리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압박 벨트였다. 그는 종일 서 있다 보니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심해 치료를 받는 중이라 답했다. 허리 통증에 한여름의 더위까지 겹칠 때면 그의 노동은 두 배로 힘들어진다.

빅이슈코리아는 주거취약계층인 빅판의 자활을 돕는다. 지금까지 사회는 주거취약계층을 홈리스라 호명해왔다. 이들을 홈리스대신 주거취약계층으로 부르자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이 오히려 더 드러났다. 빅이슈 김선화 코디네이터는 주거취약계층의 범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거취약계층은 거리에서 생활하거나 노숙인 쉼터에 입소한 사람만을 일컫지 않는다. 돌아갈 가정이 없는 사람, 거리에 나앉을 위험이 큰 사람을 모두 아우른다.”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문제에는 빈곤 문제가 얽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임덕영 부연구위원은 빈곤의 다양한 현상들이 주거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게 바로 주거취약계층이라 설명했다. 이들이 주거취약계층이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고용 불안정이든, 대공황 같은 경제 변동이든, 저임금으로 인한 실업이든 모두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원인이 다양한 만큼 주거취약계층 개개인의 욕구 역시 다양하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이들의 욕구는 온전한 주거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꾸리고 싶다는 바람으로 수렴한다.

빅이슈코리아는 이 욕구를 포착해 주거취약계층에게 자활의 기회를 제공한다. 빅이슈의 발행 목적은 단지 수익 창출에 국한되지 않는다. 빅이슈코리아는 취약계층의 인간다운 삶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조각난 사회적 관계를 다시 촘촘히 꿰어가는 데 초점을 둔다. 안 본부장은 말했다. “빅이슈는 주거 상향과 취업을 연결해 주거취약계층이 빅이슈를 떠나더라도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모델이에요. 자립하고자 하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서비스를 제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저희는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빅이슈코리아의 최우선 과제는 주거취약계층의 정착이다. 이를 위해 빅이슈코리아는 주거 안정 서비스를 비롯한 포괄적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안 본부장은 주거취약계층이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주거 상향 사업과 더불어 생활 습관 코칭, 식사 지원, 신용회복 지원 등 자립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지역사회에서 이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지원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위기의 빅판
위기의 주거취약계층

 

빅이슈 판매량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상황 이전에 비해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안 본부장은 말했다. “주거취약계층의 권리를 환기하고 공론화하는 데 있어 잡지 구매 경험이 정말 중요합니다. 빅이슈는 가치 소비에 가까운 상품이에요. 빅이슈 판매원의 자립과 주거권에 대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동안 구매 경험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앞으로도 걱정이 큽니다.”

판매량이 줄자 빅이슈코리아의 재정 상황 역시 어려워졌다. 안 본부장은 덧붙였다. “잡지를 다시 제작해 빅판의 일거리 서비스를 유지하는 데만 해도 수입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작년 하반기에 연말 모금 캠페인을 처음으로 펼쳤습니다. 여기서 잡지 제작비 일부를 마련하긴 했는데, ·오프라인 잡지 판매 수익만으로는 여전히 법인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홍보 대행 용역 사업 등을 펼치며 법인을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 빅판이 하루에 판매하는 잡지는 10권 정도다. 잡지 1권 당 판매가 7천 원의 절반인 3천500원이 빅판에게 돌아간다.
▶▶ 빅판이 하루에 판매하는 잡지는 10권 정도다. 잡지 1권 당 판매가 7천 원의 절반인 3천500원이 빅판에게 돌아간다.

 

빅판의 수입은 판매 실적에 비례한다. 판매가 7천 원의 절반인 3500원의 수익이 빅판의 몫으로 돌아간다. 송씨는 말했다. “하루 평균 수입은 3~4만 원입니다. 하루에 6시간 정도 일하니 시급으로는 6천 원쯤 되는 셈이죠. 판매량이 저조하니 수익 역시 적어요. 교통비, 밥값, 약값을 빼면 남는 돈이 거의 없습니다.”

수입이 줄자 많은 빅판이 활동을 중단했다. 한때 70명에 달했던 빅판의 수는 현재 30명가량에 불과하다. 남은 이들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빅이슈를 팔고 있다. ‘왜 오늘도 빅이슈를 팔러 나오셨느냐고 묻자 송씨는 답했다. “제가 지금 꿈이란 걸 꿀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뿐입니다.”

빅이슈의 위기는 주거취약계층의 발돋움 자체가 위태롭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빅이슈의 지원 모델이 흔들린다는 건 주거취약계층 지원의 큰 축이 휘청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빅이슈의 위기는 단편적이지 않다. 한 회사의 재정 위기로서만 이를 논할 수 없다.

 

그들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지금까지 취약계층에 대한 공적 지원은 비가시화 방식으로 이뤄졌다. 비가시화 방식은 시설에 입소한 주거취약계층에 한해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자를 배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적 지원은 시설 바깥에 닿지 않는다. 이때 일반시민과 주거취약계층 사이에 선명한 경계가 그어진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책 시설사회에서 비가시화의 메커니즘을 시민으로부터 노숙인을 대별하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IMF 이전부터 장기 노숙을 해 온 사람에게는 IMF 이후 실직한 사람과 달리 지원 대책이 없었다. 노숙 자체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갱생이 가능한 사람, 시민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 실업 대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 장기 노숙인, 부랑자, 구걸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시민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없거나 복귀시키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윤영 외 20시설사회)

지원 정책에서부터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유송희 연구교수는 주거취약계층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IMF와 같은 우리 사회의 실패가 주거취약계층을 대거 양산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주거취약계층으로 밀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공적 지원이 절실하다. 우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2021 노숙인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제 등 공공부조를 강화하는 정책을 예방적 차원에서 시행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시설 바깥에 있는 취약계층을 포괄하는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주거 지원 역시 시급하다. 실태조사에서는 주거는 노숙 문제의 출발 지점이면서 사회 복귀로의 종착점이라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안 본부장은 주거취약계층을 격리·보호·관리하기 위한 비용보다 이들에게 주거와 자립 프로그램을 제공했을 때의 비용이 더 적을뿐더러 이들의 자립율도 휠씬 높다비가시화 방식보다 지원주택 등으로 이들을 지역사회에 포용하는 방식이 훨씬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이라 전했다.

공공근로 등 일자리 서비스를 확충해 정부 차원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자활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임 부연구위원은 일자리에 대한 욕구와 정도가 상이하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에게 안정적이고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고운선 기자
avakobo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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