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별 전문 상담가 고선규 인터뷰

“자연스럽게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픈 사별도 있다는 것, 특히 자살이나 재난이나 사고와 같이 예측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죽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별의 순간에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남은 인생을 산다는 것,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불쑥불쑥 떠나간 사람이 지독히도 아프게 떠오른다는 것” (고선규,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사별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람. 고선규(47)는 자살 사별자의 애도를 돕는 임상심리 전문가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일하며 자살 사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심리부검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다. 자살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데이터화하는 심리부검을 면담에 처음 도입하기 위해 사실상 ‘맨땅에 헤딩’을 했다. ‘자살 사망 원인이 규명돼야 그에 기반한 자살 예방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정부 기조에 맞춰 2014년부터 심리부검 면담을 시작했다.

 

▶▶ 고선규는 자살 사별자의 애도를 돕는 임상심리 전문가다. 그는 자살 사별자 심리지원 단체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다. 고선규 제공
▶▶ 고선규는 자살 사별자의 애도를 돕는 임상심리 전문가다. 그는 자살 사별자 심리지원 단체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다. 고선규 제공

 

예기치 못한 자살, 그리고 사별

 

자살 사별자와의 만남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그는 “(자살 사별자를 실제로 만나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고 표현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만 3천195명이다. 반면 2017년부터 5년간 시행된 심리부검은 594건에 그쳤다. “심리부검이라는 면담 방식이 생경한 데 더해 단어 자체에서 오는 무거움이 있잖아요. 본인을 드러낸다는 게 마치 부관참시당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자살은 꽤나 ‘흔한’ 죽음이다. ‘2020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은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5위를 기록했다. 자살이 고통 끝에서 마주하는 하나의 ‘선택지’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그는 “특별한 사연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자살 사망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살은 나약한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자살 유족 치료비 지원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자살로 죽었는데 나라에서 무슨 지원을 해주냐’, ‘나도 죽을 테니 치료비 달라’ 같은 말이 유족들의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자살로 남겨진 이들이 ‘고인을 자살로 잃었다’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실제로 ‘2018 중앙심리부검센터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면담에 참여한 자살 유족의 71.9%가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지 못했다’고 밝혔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자살이 감춰지고 숨겨지는 사이 자살 사별자들의 고통은 커진다. 많은 자살 사별은 ‘외상적 사별’의 형태를 띤다. 예기치 못하게, 급작스럽게 발생한 자살은 다른 죽음에 비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가려내기 어렵다. ‘죽음의 이유’가 흔들릴 때 자살로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내가 그의 죽음에 기여한 건 아닐지’, ‘나는 왜 그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추궁하는 것이다.

장례식에서부터 애도의 출발은 어그러진다. 그는 “장례를 통해 슬픔을 겪는 건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의 일부인데, 자살 사별의 경우 그러한 슬픔을 가로막는 분노와 죄책감 등의 감정이 훨씬 깊고 강하다”고 말했다. 자살 사별자들은 사망 경위를 숨기거나 죽음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온전하게 죽음을 슬퍼한 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죽음의 언저리에 머무르는 이들이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살 사별자의 애도는 그렇게 처음부터 틀어진다. 애도 상담가 윌리엄 워든(William Worden)이 정리한 애도 이론에 따르면 애도는 ‘죽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살은 그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 보니 애도의 첫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죽음을 덮어두는 경우가 잦다.

 

애도는 ‘단계’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는 자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자살 사별자’라 명명했다.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떤 이의 죽음에 영향을 받고, 그 죽음을 슬퍼하고,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하며, 나름의 충분한 애도를 거쳐야 하는 ‘사별자’라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자살자에 대한 언론보도는 많아요. 그런데 자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되는지, 자기 삶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보도는 몇 없거든요. 자살 사별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자살 사별자들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하며 그는 그들의 삶을 치열하게 들었다. 면담 한두 번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심리 부검은 어쨌든 일회적인 면담이에요. 한번에 3시간 만나는 게 전부거든요. 조금 더 깊은 개입과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2018년부터 그는 개인 애도 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자살 사별자들은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 낙인찍는 경향을 보였다. 자살 사별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의 8.3배에 달한다는 점에서도 적극적인 애도의 시간은 절실했다. 보다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상담이 필요했다. 그는 “(애도 상담은) 죽음에 뒤따르는 고통을 안전하게 겪어내도록, 애도 과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답했다.

자살 사별자의 범주는 ‘자살은 이러하다’, ‘자살 사별자는 이러하다’는 같은 몇 개의 문장으로 모이지 않는다. 죽음의 이유에 따라, 애도 과정에 따라 오히려 사방으로 퍼진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그는 “애도 상담을 해보니 배우자 사별, 자녀 사별, 형제 사별, 친구 사별 등은 모두 다양하고 고유한 색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살 이후의 애도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애도의 방식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uebler-Ross)가 정리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 모델이다. 이는 애도를 단계별로 밟아가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그러나 애도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복잡다단하게 진행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단계가 아니라 과정”이자 “치열한 노동”이다. 그는 “(애도는)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라며 “죽음에 대해,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죽음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동반한다”고 했다.

 

▶▶ 고선규는 2018년부터 개인 애도 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애도 상담이 "죽음에 뒤따르는 고통을 안전하게 겪어내도록, 애도 과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답했다. 고선규 제공
▶▶ 고선규는 2018년부터 개인 애도 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애도 상담이 "죽음에 뒤따르는 고통을 안전하게 겪어내도록, 애도 과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답했다. 고선규 제공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다”

 

자살 이후 남겨진 ‘삶’들이 그를 찾아온다. 죽음 이후 자신의 감정에 온전히 머무르는 게 힘든 사람들이다. 애도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작업인데, 이들 각각의 삶은 마치 ‘고립된 섬’처럼 흩어져 있다. 그는 사별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이음매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개인 애도 상담을 시작한 지 1년 뒤, 그는 2030 여성 자살 사별자와 한 달에 한 번씩 자조 모임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 내담자는 “혼자서 하는 애도는 너무 힘이 드는데, 함께 죽음을 돌이켜보고 서로의 힘듦을 이야기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자살 사별자들에겐 지지 기반이 중요하다.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주어지는 안정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해도 되겠다’, ‘이상하게 보이거나 비난받지 않겠다’ 같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하고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건 고인의 수많은 관계를 조망하고, 비난을 내려놓고, 용서와 위로를 나누는 경험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애도의 자리를 제공하자 자살 사별 당사자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그는 3년간 애도 작업을 함께한 중년 남성 한 분을 떠올렸다. 자녀를 자살로 사별한 아버지였다. “지독하게 힘든 1년을 견뎌내고 2년, 3년이 지나자 격렬했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른 국면이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다른 사별자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제 소중한 내담자가 됐어요.”

우리 모두가 자살 사별자라면 남겨진 이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도의 여정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그는 “거창한 이름의 연대보다 자살 사별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했다. 누군가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다면 상실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회고해보는 것. 자살 이후 지난한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는 존재가 있음을 기억하는 것. 이는 멀어 보이지만 분명 근처에 있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가닿는 일일지도 모른다.

 

※메리골드 애도센터 (☎02-501-5150) https://marigoldgroup.imweb.me/

메리골드 애도센터는 자살 사별자의 건강한 애도를 돕는 단체다. 애도 상담, 메리골드 문화살롱, 메리골드 자조 모임 등을 통해 자살 사별자의 치열한 애도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여성 사별자 자조 모임이 열린다.

 

 

글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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