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별 당사자 혜령씨 인터뷰

▶▶ 혜령씨는 자조 모임을 나가며 다른 자살 사별자들과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혜령씨가 가져온 책 『여섯 밤의 애도』에는 그들이 서로의 애도를 들여다보고 지지해 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혜령씨는 자조 모임을 나가며 다른 자살 사별자들과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혜령씨가 가져온 책 『여섯 밤의 애도』에는 그들이 서로의 애도를 들여다보고 지지해 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살 사별 과정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혜령(가명·29)씨는 짧게 침묵했다. 지난 2018년 남동생의 자살 이후 혜령씨는 “지독하게 외로운 고통의 진공 상태”를 겪었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죽음에 직면하는 것부터가 정말 두렵더라고요. 화상 입은 것처럼 늘 뜨거운 느낌이 들었어요.”

혜령씨는 죽음의 시간을 치열하게 통과했다. 애도 상담을 하면서 “결국엔 불씨를 다 태워서 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태워지는 과정에 있는 거구나’, ‘재가 되면 고통의 온도가 조금은 낮아지겠구나’ 생각하며 혜령씨는 한 줌의 희망을 가졌다. 애도가 죽음의 잔불을 남김없이 꺼뜨리는 ‘노동’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자살 사별자의 삶은 자살 전후로 급격하게 달라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자살이 5~10명의 주변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국내 연간 자살 사망자 수가 1만 3천여 명임을 고려하면 해마다 6만 명 이상이 자살 사별자의 삶을 살아가는 셈이다.

혜령씨는 인터뷰 내내 ‘자살’, ‘사별’, ‘애도’를 설명하기 위한 표현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는 “자살 사별 당사자는 늘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무엇을 붙잡아도 부족하다”면서 “홀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가닿고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이건 혜령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자살 사별자와 충분한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 자조 모임에 비치된 다양한 색의 팔찌. 혜령씨가 참여한 자조 모임에서는 고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팔찌를 나눠 낀다고 한다.
▶▶ 자조 모임에 비치된 다양한 색의 팔찌. 혜령씨가 참여한 자조 모임에서는 고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팔찌를 나눠 낀다고 한다.

 

자살 뒤에 남겨진 ‘자살 사별자’

 

애도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혜령씨는 종종 가슴에 깊은 통증과 조임을 느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정신과 약물이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스스로 애도의 터널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어요. 애도는 평생 멈추지 않고 해야 하거든요.”

고인의 죽음과 함께 애도의 시기가 바로 찾아오는 건 아니다. 자살 이후 따라붙는 법적‧행정적 절차가 가장 먼저 애도의 출발을 가로막는다. 유족들은 경우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고, 고인의 남은 부채를 짊어지고, 고인과 엮인 법적 분쟁을 대신 해결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채 안 된 상태에서 죽음 이전의 삶을 수습해야 했던 혜령씨는 “애도에 다다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떠올렸다.

동생의 죽음이 있고 한 달이 지나 혜령씨는 애도 상담을 받았다. 부모님께 필요한 상담을 알아보기 위해 임상심리 전문가 고선규(47)씨를 찾아간 게 계기가 됐다. “저도 상담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됐는데, 운이 좋은 편이었죠. 저는 제 이야기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 비교적 익숙했고, 저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덕에 애도 상담을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자살 사별자는 애도 상담을 제때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조사한 ‘자살 유족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족은 사별 직후~3개월 이내 가장 도움이 필요하나, 사별 후 평균 21.45개월이 지나서야 상담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도 특화 상담을 이용하는 건 평균 27.13개월이 지나서였다.

상담은 여러모로 힘겨운 애도의 과정이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동생의 죽음에 직면하려고 혜령씨는 무척 애를 썼다. “상담을 받고 나면 정말 많이 아파요. 정의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과 감정을 꺼내서 말해야 하잖아요. 처음 한 시간 상담 받고 나서는 몸살이 났어요. 열이 굉장히 심해서 회복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자살 사별자들과 이야기해보면) 꽤나 보편적인 증상이더라고요.”

상담 초기 자살 사별자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큰 두려움을 느낀다. 고인의 죽음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혜령씨에 따르면 애도는 “어느 정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를 계속하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만큼 고통스럽고, 절박한 만큼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애도의 파고를 견딜 준비가 스스로 돼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나가는 거죠.”

 

▶▶ 자조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 자살 사별자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 자조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 자살 사별자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충분한 애도를 거쳐 성장하기까지

 

“남겨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 미친 듯이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 사별자들은 그 사람이 겪었을 역경을 더듬어봐야만 한다.” (고선규, 『여섯 밤의 애도』)

애도의 속도와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애도가 시작되는 특정 시점을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애도의 기간을 돌이켜보며 혜령씨는 “개개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점부터 그에 맞는 각자의 애도가 시작된다”고 답했다.

애도는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스스로 찾아가는 일이다. 심리 상담을 받거나, 자조 모임에 가거나, 둘을 병행할 수도 있다. 혜령씨는 상담을 받다가 자조 모임을 가게 된 경우다. “애도 상담을 받으면서 꽤 오랫동안 제 이야기를 했으니 자조 모임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가려니 떨리고 무섭더라고요. 새로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저를 드러내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 있었던 거죠.”

혜령씨가 찾아간 ‘메리골드’는 자살 사별자의 심리를 지원하는 자조 모임이다. 리더를 제외한 사별자들은 정기 및 수시 모임을 유동적으로 오간다. 때로는 가족과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이어 말하는 애도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자살 사별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 다르게 살아가는 존재들은 서로에게 제법 큰 힘이 된다.

“서로의 성장을 목격하는 순간”이 자조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혜령씨는 말했다. “제가 말하는 성장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할 수 있도록 변화한다는 거예요. 처음 자조 모임에 왔을 때 자기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던 분이 ‘이번 주에는 유독 더 슬펐다’면서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봐요.” 이들은 애도를 거쳐 성장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헤쳐 왔는지 잘 안다. 자조 모임은 그들에게 그만큼 귀한 공동체다.

자조 모임은 고인과의 관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죽음 직후에는 대개 고인의 좋은 점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혜령씨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인과의 사소한 다툼, 고인에게서 받은 상처 같은 것도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자조 모임은 고인을 마냥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긴 시간 애도를 거쳐 온 자살 사별자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사랑하는 고인의 다양한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더라고요.”

혜령씨는 복잡한 애도의 과정을 회피하지 않았다. 애도를 먼저 경험한 혜령씨는 어딘가에 여전히 고립돼 있을 자살 사별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든, 조금 먼 사람이든, 그 사람이 떠난 뒤 길을 잃은 것만 같을 때가 있을 거예요.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길을 크게 잃었다면 자조 모임에서 저희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메리골드 애도센터 (☎02-501-5150) https://marigoldgroup.imweb.me/

메리골드 애도센터는 자살 사별자의 건강한 애도를 돕는 단체다. 애도 상담, 메리골드 문화살롱, 메리골드 자조 모임 등을 통해 자살 사별자의 치열한 애도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여성 사별자 자조 모임이 열린다.

 

 

글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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