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갑질 금지법 시행 5개월, 경비원 처우의 현재와 미래를 톺아보다

“법이 개정됐어도 현장은 똑같아요. 불법이더라도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경비원은 내몰리기 마련이죠.” 지난 8일 압구정동 ㄱ아파트에서 만난 관리원 J(62)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2021년 10월 21일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아래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시행되고 다섯 달이 지났다. 현장에는 여전히 빈틈이 남아있다.

 

가깝지만 먼 이웃 
아파트 경비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51.1%를 기록했다. 국내 절반 이상의 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경비원의 근무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발간한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평균 경비원 수는 17.8명으로 집계됐다.

경비원과 아파트 주민 간 갈등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지 5년이 된 L(63)씨는 “어떤 아파트에서 일하더라도 갈등은 늘 있다”고 말했다. 경비원이 경험하는 일상의 갈등은 불합리한 대우로 번지기도 한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책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저술한 최훈 작가는 “경비원이 입주민 혹은 관리사무소와 불화를 겪으면 임시계약직으로 채용된 경비원은 절대적 ‘을’이 된다”며 “경비원의 주장이 합리적이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이 발간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아래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경비원 3천388명 중 24.4%는 입주민으로부터 욕설이나 무시, 폭언, 구타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갑질을 실제 경험한 경비원이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 박현수 전문위원은 “고령의 경비원들은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밝히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에는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며 갑질 문제를 근절할 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관련기사 1852호 8면 ‘[시사 바로쓰기] 갑질, 인성의 문제일까요?’> 해당 사건을 필두로 입법이 논의된 결과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시행됐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 주요 골자는 공동주택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해 갑질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능 업무’와 ‘제한 업무’가 구분된다. 주차 관리는 가능하지만 대리 주차는 불가하고, 택배 업무의 경우 물품 보관은 가능하지만 세대 배달은 제한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경비원 갑질 금지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 포착된다.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채용하는 ‘꼼수’가 대표적이다. 관리원은 경비원 갑질 금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직장갑질119 권두섭 변호사는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채용해 법망을 빠져나간 것”이라 설명했다. 박 전문위원 역시 “경비원 갑질 금지법에 ‘경비원’ 제한 업무를 명시해놓으니 ‘관리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편법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실제 근무체계는 경비 업무와 관리 업무를 모두 맡는 이전과 같다”고 지적했다. 4년째 ㄱ아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아파트 관리원 J씨는 “경비원으로 일하던 중 갑자기 관리원으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업무는 똑같다”며 “법안이 개정된다는 소식에 발 빠르게 편법으로 대처한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10월 21일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제정돼 시행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채용하는 등 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2021년 10월 21일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제정돼 시행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채용하는 등 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시공(時空)을 옥죄는 고용 불안 
현행법은 해결 못해…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경비원 갑질 금지법의 실효성이 미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문위원은 “경비원 갑질 금지법으로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근절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다”며 “고용 불안은 경비원이 갑질을 당했을 때 적극적인 신고와 해결을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경비원들은 일선에서 고용 불안을 체감한다. 최 작가는 "작년까지 근무했던 아파트에서는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연장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면서 사직서를 함께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J씨는 “2년마다 경비용역업체가 바뀐다”며 “그때마다 한 번씩 고용 승계를 하는데, 고용이 보장되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용 불안으로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보니 법안 개정에도 갑질 문제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권 변호사는 “갑질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대부분이 계약직인 아파트 경비원은 신고와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고용이 단절되는 불안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제도들은 고령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아 고용 불안을 가중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기간제법) 제4조에 따르면 계약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한 경우 근로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자동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 조항을 뒀다. 기간제법 제4조 1항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아래 고령자고용법 시행령) 제2조 제1호의 고령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무기계약직 자동 전환에 예외를 허용한다. 고령자고용법 시행령은 고령 노동자를 55세 이상으로 규정한다. 현장 경비원 대다수는 고령 노동자다. 경찰청이 발표한 ‘경비원 연령별 현황’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경비원은 전체의 54.3%를 차지한다. 50대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65.5%에 달한다. 고령 노동자가 대다수인 아파트 경비원은 예외 조항이 적용돼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행 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근무 공간과 시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근로감독 집무 규정에 따르면 경비원은 별도의 휴게 시설 또는 몸을 눕혀 수면하기에 충분한 공간에서 휴식해야 한다. 그러나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중 23.2%가 경비초소를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방문했을 때 J씨는 한 평 남짓한 초소 한편에 놓인 매트리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운 채 팔을 몸에 꼭 붙이지 않으면 팔이 흘러내릴 정도로 매트리스는 비좁았다. 

열악한 처우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휴게 시간에 근무지를 벗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다고 응답한 경비원은 24.1%에 불과했다. 휴게 시간 안내문이 붙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30분, J씨가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한 입주민이 주차 문제로 초소를 찾자 급히 차키를 들고 나섰다. 휴게 시간에도 J씨는 바빴다. “휴게 시간이라고 적어놨을 뿐이지, 시간 구분 없다니까요. 휴게 시간을 보장하는 법이 있습니다만 경비원‧관리원에게 딱 잘라 적용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휴게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한다면 지금 인력의 절반은 해고될 겁니다.”

 

갑질 금지를 넘어 
근본적인 처우 개선으로

 

전문가들은 ▲경비원의 법적 지위 재정립 ▲고용 형태 변화 ▲경비원의 주체적 교섭 참여 ▲교육의 법적 의무화 필요성을 제기한다.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오규철 교수는 “경비원과 관리원의 업무와 직책을 이원화해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문위원은 “현재의 제도상 경비원은 감시·관리 업무를 도맡는다”며 “감시단속직이 유지되면 경비 업무만을, 감시단속직에서 벗어나면 관리 업무만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상황을 반영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권 변호사는 말했다. “좋은 취지로 경비 외의 업무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다가 도리어 고용 불안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경비원을 고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현장 상황을 꾸준히 조사하며 제도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경비원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문위원은 단기 계약과 간접고용을 문제로 제시했다. 그는 “간접고용은 사용자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간접고용과 초단기 계약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55세 이상 노동자를 단기 계약직으로 무한정 사용하는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와 현장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지난 1월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 8명이 집단 해고된 후 2월 22일 입주자대표회의(아래 입대의) 및 용역업체와의 대화를 통해 ‘입대의·용역업체·노조 합의안’이 나온 바 있다. 합의안에는 경비원 전원을 포괄 고용 승계하는 등 경비원의 요구사항이 반영됐다. 박 전문위원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당사자인 경비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자조 모임과 노동조합을 조직화하고 경비원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를 설립하는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 역시 “삶의 주체인 경비원이 일상적으로 교섭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아파트 입주자 대표 연합체, 아파트 경비원 노동조합, 광역 시도의 3자 간 교섭 구조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비원이 노조 설립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직종 특성을 배려한 대안이 제시된다. 박 전문위원은 “아파트 경비원 노조가 대거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며 “경비원은 입주민과 용역회사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고용 불안을 겪고 심하면 해고까지 당할 수 있어 조직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대표성 있는 상위 단체가 합의점을 찾고 하위 기관이 이에 따르는 산업별 교섭 방식을 강조한다. 산업별 교섭에서는 지자체와 지역별 아파트 입주자 대표, 전체 경비원 노조가 교섭해 개별 사업장인 각 아파트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산업별 교섭으로 공통 의제를 해결한 후, 개별 사업장에서 노동자 대표와 사용자가 재차 합의하며 간극을 줄여나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법정 의무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오 교수는 말했다. “관리소장을 포함한 용역업체 관리자, 입주자 대표 회의 구성원들에게 법정 의무 교육을 부과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경비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 사례로 학습하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죠. 교육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시행됐으나 현장 변화는 요원하다. 갑질 문제와 노동·처우 문제로 아파트 경비원은 진통을 겪고 있다. 박 전문위원은 말했다. “경비원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상생 가능한 공동체로 인식해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많은 일을 도맡는 경비원을 돌아보는 제도적·사회적 노력이 절실합니다.”

 

 

글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사진 김지훤 기자
kimzlight@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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