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살펴보다

지난 21일 발발한 군사 쿠데타로 미얀마 민주주의는 다시 어둠을 맞이했다. 기나긴 군부 독재를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미얀마 시민들은 또 한 번의 싸움을 치르고 있다.

 

지난한 군부 독재 역사와
찰나의 문민정부 시기

 

영국의 지배를 받던 미얀마는 1948년 독립에 성공했다. 영국령 인도를 통해 미얀마를 지배한 영국은 분할통치 방식을 활용해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했다. 소수민족 출신을 고용해 다수의 버마족을 억압하고 민족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미얀마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으로 여겨지는 아웅산(Aung San)1947년 소수민족 대표자들과 만나 소수민족의 평등한 대우를 약속한 팡롱 협정을 체결하는 등 단일 연방국으로 독립하기 위해 힘썼다. 이후 영국 총리였던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에게 미얀마의 완전한 독립을 약속받았다. 아웅산은 1947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독립 정부 출범을 목전에 뒀지만, 같은 해 7월 암살당하며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우누(U Nu)가 총리직을 대신 맡아 19481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정부를 구성했고, 국호를 버마연방(Union of Burma)이라 정했다.

14년간 이어진 우누 정부는 지난 19622월 네윈(Ne Win) 장군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이는 2015년까지 이어진 군부 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한 네윈 군부는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키우고 국가 경제를 외부와 고립시켜 미얀마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악화했다. 동아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박장식 교수는 미얀마 군부 지배의 역사적 고찰 - 그 정치 동력의 구조에서 버마식 사회주의의 핵심은 언론 자유와 표현의 금지, 외국 기관의 강제 퇴거, 모든 산업의 국유화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군부는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소수민족 반란을 명분 삼아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에도 지속해서 갈등을 유도했다.

군부 독재 기간 지속된 시민 항쟁은 지난 1988년 대중 시위로 확대됐다. 네윈의 대통령직 사임에도 시위는 격렬해져 198888‘8888항쟁으로 치달았다. 당시 아웅산의 딸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가 미얀마 정치에 정면으로 등장하며 민주화 세력의 결집을 이끌었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던 중 1988918일 소마웅(Saw Maung) 장군의 주도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19897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을 이끌던 아웅산수찌는 선거 유세 중 가택에 연금됐다. 19905월 선거에서 NLD는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시하며 미얀마 시민의 민주화 의지를 꺾었다.

이후 20년간 이어진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군부는 지난 2008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201011월 총선을 진행했다. 그러나 2008년 헌법은 상·하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해 사실상 군부 동의 없이는 헌법을 개정할 수 없고, 군부가 국방부, 내무부, 국경부 장관의 지명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박 교수는 미얀마 아웅산수찌 정부의 반환점: 불공평 게임 속의 점증하는 위기에서 “2008년 헌법이 군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 구도로 짜여있어 NLD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더라도 정국을 주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NLD2010년 총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군부가 범법자들은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는 선거법을 통과시켜 아웅산수찌를 비롯한 정치범의 출마를 막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짧은 후보자 등록 기간과 소수민족의 투표권 박탈도 문제였다. 이후 2015년 총선에 참여한 NLD는 압승을 거두며 기나긴 군부 독재의 터널을 뚫고 20163월 문민정부 구성에 성공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소수민족과의 평화협상 및 헌법 개정 부진 등 여러 악재에도 NLD는 지난 202011월 총선에서 연이어 압승을 거둬 문민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총선 이후 계속해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군부가 21일 쿠데타를 일으키며 문민정부 2기 출범의 희망은 꺾였다.

 

군부의 쿠데타 피바람에도
타오르는 미얀마 민주주의

 

지난 21일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 미얀마 육군 최고사령관에 의해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다.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은 수출입법 위반으로 기소돼 또다시 구금됐다. 이후 군부는 과도정부를 구성해 본격적인 공포 정치를 시작했다. 29일 수도인 네피도에서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첫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이에 군부에 저항하는 시위가 급격히 확산했고, 미얀마 국립병원 의료진, 공무원, 교사 등은 단체로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시민들의 저항이 강해지자 군부는 강도 높은 탄압을 가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피의 일요일로 불린 218일에는 최소 18명의 민간인이, ‘피의 수요일’ 33일에는 39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AAPP)329일 기준 누적 사망자가 510명이라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 세력에 빠르게 대응했다. 미국은 지난 210일 공식 성명을 통해 4200만 달러 규모의 원조를 중단하고, 군부의 주요 인물 및 군부와 연계된 사업체를 특별 지정국가 국민 및 차단 인사 목록*으로 지정하는 등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행했다. 목록에는 민 아웅 흘리잉을 비롯한 미얀마 군부 주요 지도자 10명과 군부 연계 사업체 3곳이 포함됐다. 영국 역시 쿠데타 관련 인사들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고 양국 간 경제협력을 종료했다. 우리 정부는 미얀마와의 국방 및 치안 분야 협력을 중단하고, 군용물자 수출을 금했다.

국제기구도 대응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Manuel de Oliveira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피의 일요일에 미얀마의 폭력적 진압을 비난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지난 331일에는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아래 안보리) 회의가 열렸다. 안보리 회의에서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Christine Schraner Burgener) 미얀마 특사는 미얀마 군부의 잔혹 행위가 심각하다며 적극적인 유엔의 개입을 호소했다. 그러나 안보리는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각국이 미얀마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에서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부 세력에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반대했다.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박현용 교수는 미얀마 군부는 중국에서 군사 지원을 받고,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두 국가가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에 근거해 개입과 제재를 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대응이 미얀마 군부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미얀마는 본격적으로 경제를 개방한 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경제 대외 의존도가 낮다미국과 유럽이 미얀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로 군부는 경제 제재를 받아도 큰 타격이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 무역학과 최영준 교수는 미얀마가 중국과 러시아에 많이 의존하는 만큼 이들 국가를 통한 제재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APP에 따르면 지난 925일 기준 구금자는 6803, 사망자는 1125명에 달한다. 군부의 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미얀마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 따르면 미얀마의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는 131281명에서 714783명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불타오르는 중이다. 41일 연방정부 대표위원회(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taw, CRPH)가 미얀마 내부에 임시 정부인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를 구성하며 군부 세력과 시민군 간 무력 대치가 본격화됐다. 이어 97일에는 NUG와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군부에 대항해 통합 저항전을 선포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불복종 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International Amnesty),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등 국제 NGO들은 모금 활동, 시민불복종 지원 및 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가며 이들의 민주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 교수는 미얀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오늘도 노란 파다욱(Padauk)을 손에 쥐고 거리에 나선다. 자욱한 포탄 연기 속 형형한 노란빛은 군부의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듯하다. 긴 어둠이 걷히고 미얀마가 비로소 민주주의를 되찾는 날을 기대한다.

 

*특별 지정국가 국민 및 차단인사 목록(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and Blocked Persons Lis, SDN List): 미국 재무성 산하의 해외자산통제국이 특정 국가 및 개인, 기관과 미국의 거래를 제재하는 목록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한 국가가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 범죄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때,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는 국제정치 개념으로 2006년 국제규범으로 확립됨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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