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보도부장(경영·15)
김수영 보도부장(경영·15)

매년 11월과 이듬해 4월에는 학생회 선거가 열린다. 그러나 선거본부와 그들의 공약은 주변의 많은 고학번 친구들의 눈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런 공약을 가져왔어?’라는 말도 많이 하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학생회에 출마한 대부분은 아마추어다.

여러 학기에 걸쳐 몸담았던 학생사회를 떠나는 시점에 과거를 돌아본다. 매년 다른 직책을 갖고 활동했지만, 항상 드는 생각은 ‘나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하는 것이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다. 많은 친구가 ‘그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흘러가듯 일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모두 아마추어였던 셈이다.

대표자든, 집행위원이든 학생사회에 있는 우리는 항상 아마추어의 자리에서 일한다. 확대운영위원도 중앙운영위원도 대부분은 매년 처음으로 그 직책을 맡아 활동한다. 집행위원들도 국원으로 일하다 다음 해에는 국장급이 돼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두 학기를 일하고, 일이 손에 익어 좀 잘할 수 있겠다 싶으면 임기가 끝난다. 이제 갓 성인이 된 학생들이 1년밖에 안 되는 임기 동안 일하려니 항상 사건 사고가 터지고, 수습하기 바쁘다. 그 과정에서 경험치는 쌓이지만, 이 경험치를 쓸 새도 없이 임기를 끝내고 물러난다. 결국 경험치는 후대로 온전히 전수되지 못한다. 이렇게 학생사회에는 매번 단절의 순간이 찾아온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학교본부를 이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몇 가지 의제에서 총학생회가 학교본부로부터 원하는 바를 이뤄낸 적은 있었지만 늘 큰 진통을 겪었다. 교학협의체든 등록금심의위원회든 학생들이 파견할 수 있는 위원은 늘 한정됐고, 그들은 정보든 결정권이든 항상 열세에 놓인 채 임해야 했다. 학생들의 고군분투 끝에 학교본부는 마치 선심을 쓰듯 몇 가지 요구를 들어준다. 물론 직접 운영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만났으니 어쩔 수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걸 빼놓더라도, 능력의 차이는 절벽에 가깝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학생회를 지켜보고 다뤄온 교직원들은 처음 그 자리에 앉은 학생 위원에게 ‘통곡의 벽’이다.

시스템과 매뉴얼은 중요성은 말해봐야 입 아프다. 정보의 축적은 시스템과 매뉴얼을 돌아가게 하는 기본요소다. 그러나 학생사회에 제대로 된 아카이브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네 학생사회에는 매뉴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없다. ‘운동권’과 ‘비(非)운동권’이 마지막으로 대립하던 2010년대까지도 총학생회가 상대편으로 넘어가면 자료를 소각해버리는 일까지 자행됐다고 하니, 제대로 된 기록의 존재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학생사회는 마치 전래동화 같다. 오래된 일들은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 전래동화보다 나은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적어도 옛날의 당사자들이 살아는 있다는 점. 언제까지 학생사회의 기억이 전래동화 수준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기억이 구전의 수준을 넘지 못하면 미래의 학생회장들은 아마추어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아카이브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매년 모든 기록이 보존돼야 할 필요는 있다. 학내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쳐야 하는 큰 사업일지라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친분이 있던 전대 총학생회장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신문사는 그나마 웹에 모든 자료가 기사의 형태로 저장되지 않냐고. 그게 아카이브로 쓰일 수 있지 않냐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보도부에서 활동하며 학생사회 기사에 집착하다시피 했다. 잘 알고 익숙한 분야이기도 했지만, 내 기사가 이 아카이브의 일부가 되길 바랐다. 이런 집착을 두고 누군가는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바보가 한 일이 조금씩 쌓여 나중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학생사회가 조금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길 바란다.

그런 뜻에서 보도부장 시절 우리신문사 홈페이지 기자소개란에 올린 ‘기자의 한마디’는 이것이다.

“내 기억이 모두의 기록으로 바뀌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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