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매거진부장 (사회·17)

학생회관 침대에서 노곤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회의가 끝나고 10분 정도 눈을 붙인다고 아무 곳에나 누웠는데, 야속한 시침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 속에는 첫눈이 내렸다며 한껏 신난 메시지들이 쌓여있었다. 덩달아 신나지는 않았다. 난방이 다 꺼진 학교에서 쓸쓸히 첫눈을 맞이했다는 씁쓸함도, 곧 성탄이 다가온다는 설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문득 나도 밖에 나가 첫눈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학관 창틀에 맺힌 눈 결정마저 녹아 흐려져, 냉랭한 물기만을 남겨갈 즈음이었다. 그렇게 짧게 스쳐 간 눈이라지만 올해 첫눈 소식은 나로 하여금 지난 열한 달을 돌아보게 했다.

 

#스물둘
2019년. 기자가 되겠다는 오랜 꿈을 놓은 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상처와 위안을 얻은 해. 사실 근 2년간 회의실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과 동기들은 매주 푸석해진 내 얼굴을 보기만 하면 ‘넌 누구 좋으라고 그렇게 사냐?’고 물었다. 난 2년 동안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다들 열심히 사니까 나도 따라서 달려보지만, 막상 뭘 위해서 이렇게 사는지는 모르겠는 그런 일상. 그래서 혹여나 놓친 게 있진 않을까 두려웠다. 스물둘의 내가 이 예쁜 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직은 치기 어린 나를 무작정 혹사시킨 건 아닌지.

 

“현지는 삶을 살면서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언제야?”

 

올해 7월, 농활 교양시간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위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속에서 뭔가가 북받쳐 오르는 걸 느꼈다. 내가 꺼낸 답은 ‘현실의 벽’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내가, 현실의 벽을 마주치고 그 앞에서 작아지는 걸 느낄 때 가장 괴롭다고. 언론사만을 꿈꿔온 시간들이 알고 보니 정처 없는 달리기였던 것만 같고, 대학원에 가보고 싶다는 말이 차마 부모님 앞에서 나오지 않을 때. 유일한 재능인 줄 알았던 외국어가 한낱 어린 시절 자랑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될 때 다가오는 무력감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눈물을 참아 꾸역꾸역 말을 하며 탁상에 시선을 떨궜다. 초라한 얼굴이 유리에 비쳤다. 눈이 붉게 물들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내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럼, 너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뭐야?”

 

다음으로 이어진 질문이었다. 가족들, 키우는 강아지 등 한 명 한 명 예쁘고 소중한 기억들을 꺼냈다. 그날 마을회관 탁상 앞에서는 모두가 학점도 스펙도 아무것도 덧대어 씌워지지 않은 20대 초반 아이들이었다. 그저 사는 게 서툰 앳된 모습으로, 아끼는 것들을 깊은 맘속에서 꺼내 자랑하는 모습이 예뻤다. 난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 자신’이라고 답했다. 스물둘도 어쩌면 진짜 나를 만나기에는 아직 부족한 나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미숙할수록, 누구보다 나를 아껴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첫눈 같은 사람
유독 희석되지 않은 채 선명한 빛이 오래 남는 기억들이 있다. 마을회관에 모여 앉았던 7월의 그 기억이 그랬다. 선뜻 서로에게 소중한 기억을 꺼내 보이며 위로를 선물했던 우리는 어느 때보다 예쁘고 똑똑해 보였다. 그날부터, 바쁜 일상에 지쳐서 나를 돌보지 못하는 삶은 죽어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회의실에서 나와 첫눈이 다 녹아버린 교정을 가로질러 자취방으로 걸어갔다. 따뜻하게 데워진 자취방에서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 고민했다. 나는, 내가 좋아서 이렇게 산다. 내 눈에는 바쁘게, 열심히, 쉴 틈 없이 사는 내가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반듯한 직장과 성공을 위해 시작한 ‘바쁜 삶’이었다. 하지만 역설스럽게도 그 치열한 일상은 성공이 아닌 다른 목표를 남겼다. 내 목표는 이제 현실의 벽을 이겨내는 게 아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훗날 꼭 ‘사회적 성공’의 완장을 찬 뒤 겉멋 가득한 명함을 내밀고자 지금을 살지 않는다. 그냥 난 치열한 삶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예쁜 기억과 위로를 선물하고 싶다. 그거면 됐다. 그저 그렇게 ‘첫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짧게 스쳐도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는. 시린 초겨울에 선물 같은 그런 사람. 2019년 한 해가 내게 남긴 사랑스런 기억들, 그렇게 그 안에서 나는 또 한 뼘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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