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 활동이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고 발언했다. 발언의 진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그는 또다시 ‘반문특위’라는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이에 일부에서 ‘토착왜구’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의 발언은 일제 36년간 식민지 지배 당시 일본에 앞장서거나 동조해 민족을 탄압하고 많은 이의 생명을 앗아간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기 위한 정의로운 역사 청산 행위를 모독했다. 설립 당시 반민특위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훼손된 인권과 사회정의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를 ‘민족분열’이라는 레토릭과 물리적인 탄압으로 해체했다. 결국 한국 사회를 오랜 군부독재와 인권 유린에 빠뜨린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런 사실관계를 자의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반민특위 해체로 인해 일제 식민지배 및 친일파 청산을 이루지 못했다는 보편적 인식을 부정했다. 심지어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맞서 싸운 김원봉을 비롯한 독립운동 투사에게도 모독적인 언사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발표된 일본 문부과학성도 우리의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소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넣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1965년 한일관계 정상화 이래 역사왜곡의 일부 개선을 보였던 모습이 오히려 과거 식민지 시대 수준으로 복귀한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일본 아베 정권은 강제동원에 대한 정당한 배상 요구를 무시하고 무역 전쟁까지도 불사할 모양이다. 나 원내대표의 언행은 이러한 일본 정부와 정치인의 행태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이처럼 역사의식의 혼란과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은 의례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악용한다. 최근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법 제정 필요성이 확산되는 것처럼, 무책임한 정치인에게도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 이를 규제할 수 없다면, 우리 세대와 그 후속세대가 지향하는 사회정의와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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