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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전수미 인권변호사와의 만남
  • 민수빈 수습기자, 양하림 수습기자
  • 승인 2018.11.26 08:16
  • 호수 0
  • 댓글 2

목숨을 걸고 탈출을 결심한 그들은 분명 더 나은 미래와 더 행복한 삶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긴 여정 끝 도착한 남한 땅엔 따뜻함이 없었다. 분명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얼굴을 한 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은 벽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 그들만을 바라보며 열정으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 차별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인권변호사 전수미 동문(03·정외)을 만났다.

그날 바뀌어버린 인생

전 변호사의 삶이 평범함에서 어긋난 것은 절친했던 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날부터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환각·환청마저 경험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죽은 이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휴학계를 내고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갈 곳 없는 마음을 안고 다다른 장소는 인도였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먼저 간 동생을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봉사를 시작했다. 사창가와 광산으로 팔려가는 아이들을 구출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사창가를 관리하던 갱 단원이 책상에 칼을 내리꽂으며 위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구해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상품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일념 덕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무섭진 않았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무덤덤했나 싶다”고 회상했다.

봉사에 전념하던 전 변호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북한이탈주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계기는 메콩 강 봉사 프로젝트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의 한 마디였다. 전 변호사가 북한이탈주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메콩 강 봉사 프로젝트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의 한 마디에서였다. “수미야,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유명한 NGO나 국제기구에는 취업하려 애쓰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관심이 없어?”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전 변호사는 북한 인권문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전 변호사는 곧 북한 인권문제를 위해 일하는 단체를 수소문했다. 실상은 너무나 초라했다. 실무자들은 모두 한국의 업무 환경에 익숙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이었다. 국제기구와의 원활한 소통에 필수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도 없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울 변호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탈북부터 정착, 적응에 이르기까지, 북한이탈주민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법적인 도움을 필요로 했다. 전 변호사는 “봉사가 아닌 본업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변호사는 드물었다”며 “빠른 일처리나 즉각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결국 전 변호사는 스스로 인권변호사가 돼 그들의 곁에 있겠다고 결심했다.

전 변호사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개인 사무소를 차리는 대신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무료 법률자문을 도맡았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다툼이 확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단순 층간 소음 사건에도 전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나라 법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도 종종 감정적‧체력적 한계를 느낀다. 변호사와 법률 실무자의 역할을 도맡아 하니 업무량이 과중하다. 하지만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또한 일이다. 승소 후의 포옹에 담긴 진심 어린 감사다.

오늘도 다시 걷는다

전 변호사는 자신을 차별의 중심에 서 있는 ‘여자이자 기독교인이자 비가시적 장애인’이라고 소개한다. 여자라는 지위는 그에게 숱한 핀잔을 듣게 했고, 기독교인이라는 지위는 뺨을 맞게 했다. 탈북민 구출 사업 중에 공안에게 쫓겨 일부 절단된 손목은 겉보기엔 괜찮아도 그에게 평생 가져갈 장애로 남았다. 이런 차별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전 변호사는 더욱 북한이탈주민들에 공감한다. 생김새나 쓰는 말이 같아도 우리나라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 그들을 돕는 일은 전 위원 자신에게도 구원이 됐다.

어떤 차별도 정당화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부당한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전 위원의 삶을 지탱하는 꿈이다. 죄책감을 덜고자 시작한 일은 어느새 그의 업이 됐고, 그는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조차 없는 길을 걸었다.

“당신만의 지도를 만드세요. 남이 그려둔 지도에는 당신의 길이 없습니다.”라는 조언을 건네는 전 변호사. 그녀는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하는 차별을 위해 오늘도 걷는다.

글 민수빈 수습기자
양하림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사진 제공 전수미 변호사>

민수빈 수습기자, 양하림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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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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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 2018-12-02 16:17:22

    정말 멋있습니다 동문님. 진정한 '인권'변호사입니다.
    동문님 인터뷰가 적어서 아쉽습니다.   삭제

    • 우와 2018-12-01 08:27:32

      멋지네요! 제목만 보고 페미니즘인줄 알고 달려든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네요...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명 NGO단체에 들어가려고 하면서 정작 북한인권문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말 공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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