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의 시인 김수영에게 지난 8월 31일 우리대학교 명예졸업장이 수여됐다. 이로써 해방 후 잠시 영문과에 적을 두었다 떠나고 다시 돌아와 강단에 섰던 우리의 선배가 제자리를 온전히 찾았다. 여러 사람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자유로운 연세를 사랑했으며 연세와의 인연을 마음에 뒀다. 특히 강단에 서게 됐을 때는 매우 기뻐했고 연극 경험(그는 연극배우이기도 했다)을 살려 문장 하나하나의 딕션까지 조절하며 강의했다 한다.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가장 큰 거목 중 하나인 그는 참된 의미에서 시대를 호흡한 참여 지식인으로 지적 수련에도 부지런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해외 잡지를 구독하면서 당대를 읽을 수 있는 시야를 얻었다.

그는 한 강연회에서 자신은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시를 쓰려면 시에 대한 모든 사변을 지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이른바 ‘온몸의 시학’을 주장했다. 시인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고 썼다. 성숙한 인간의 덕목에 사랑을 둔 것이다. 김수영 시인도 윤동주 시인처럼 민족의 비극을 살아내면서 놀랍도록 보편적이고 사랑으로 가득 찬 자세를 보여줬다.

지금까지 연세는 윤동주를 통해 연세의 문학적 성취를 내외에 알리고 스스로를 가다듬어 왔다. 이제 김수영이라는 또 다른 상징을 이어가게 됐으니 연세의 자랑이요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유산이 모교에 안착하고 “거대한 뿌리”를 내려 종요롭고 아름다운 결실이 열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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