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사진영상부장 (문화인류·17)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 재미를 깨쳤으니 그리 유서 깊은 취미는 되지 못한다. 남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일 만큼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카메라를 다룰 수 있게 된지도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찍은 사진들은 어느덧 만 장을 훌쩍 넘겼다. 개중에 ‘잘 나온’ 사진을 뒤적이는 것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줬다. 절묘한 순간을 포착한 풍경 사진, 구도가 적절한 인물사진 등이 ‘잘 나온’ 사진에 해당했다. 하지만 밑에 적은 일들을 겪으며 나의 취미생활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짭짤한 공기와 따가운 햇볕이 적절히 어우러진 제주의 여름날이었다. 나는 4.3 평화공원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교통편을 알아보던 차에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할아버지께서 목적지를 물었다. 목적지를 읊자 당신께서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나오셨다. 그리고는 직접 데려다주시겠다며 운전대를 잡으셨다. 봉개동으로 가는 차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달려 4.3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조부께 인사드리고 싶다며 5분 정도 위령비 앞을 서성이셨다. 고조할아버지의 성함을 발견하시고는 말없이 비석만을 응시하셨다. 분위기가 경직됐다고 판단하셨을까. 할머니께서 동백꽃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셨다. 동백꽃은 4·3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상징이다. 2주 동안 여행을 다니며 수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그때만큼은 쉽사리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지난 7월 26일. 우리대학교 대강당에는 유례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다. 고(故) 노회찬 의원의 추도식이 열린 날이었다. 문득 취재를 하러 간 동료 기자가 떠올라 편집국에서 추도식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내에는 고요함만이 감돌았고, 이따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던 중 행사장 앞쪽에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맨 앞줄에 앉은 내빈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사진기자들이었다. 노 의원과 뜻을 함께했던 동료들부터 평소에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까지. 그들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플래시 세례를 마주했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내렸다.

그날의 소회를 털어놓고 싶었다. 아니, 사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사자들에게 결례를 범했다는 죄책감과 숱하게 느껴왔던 뿌듯함에 관한 회의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추도식 현장에 있었던 사진기자들의 윤리의식을 꼬집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동백꽃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부탁한 할머니를 탓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자들은 자기 일을 했을 뿐이고,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손자와 사진을 찍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지 모를 답답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진에 담긴 순간은 영원으로 바뀐다. 사진 밖의 시간은 흐르지만, 사진 속의 시간은 멈춰있다. 렌즈 너머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과 나눴던 대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행복했던 기억은 추억이 되겠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고통만 더해지는 기억은 가슴을 후벼 팔 뿐이다. 할아버지에게는 4·3 사건이, 추도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는 고인의 부고가 그럴 것이다. 그렇게 지난여름의 기억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이제껏 렌즈 너머에 어떤 감정이 감도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잘 나왔다’는 말은 반쪽짜리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