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과대로선 처음… 의학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이끌까

지난 2014년, 우리대학교 신촌캠 의과대는 국내 의과대 최초로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2월에는 해당 제도의 영향을 받은 첫 졸업생들이 배출됐다. 그간 학내외에서는 절대평가 시행에 따른 여러 우려가 일었다. 절대평가 도입 4년, 의과대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알아봤다.

 

의과대, 왜 절대평가인가

 

의과대가 절대평가를 선택한 이유는 변화한 의학교육이 새로운 평가방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양은배 교수(의과대·의학교육)는 “의과대는 과거 구조·과정 중심교육에서 ‘성과·역량 중심교육’으로 의학교육의 목적을 전환했다”며 “학생들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성과를 내는지에 대한 판단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상대평가제도에서는 개인의 성과가 아닌 동료의 성취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된다. 이에 의과대는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통과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절대평가제도의 도입을 결정했다.

지난 2012년, 의과대는 ‘성과중심 교육과정 TFT’를 설치해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한편 절대평가제도 도입 준비에 착수했다. 2014년에는 당시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14학년도 이후 본과 진입생들은 필수과목에서는 H(Honor, 최상위)·패스(Pass)·논패스(Non-Pass)의 세 단계, 나머지 과목에서는 패스·논패스 두 단계로 평가된다. 올해 2월에는 본과 전 과정에 걸쳐 절대평가제도가 적용된 학생들이 졸업했다.

 

절대평가제도 도입, 성공적?

 

▶▶지난 6월 22일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 ‘의과대학 학생평가제도 혁신을 위한 심포지엄’이 진행되는 모습

지난 6월 22일,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유일한홀에서 ‘의과대학 학생평가제도 혁신을 위한 심포지엄’(아래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심포지엄에서는 전반적인 우리나라 대학의 상대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의과대의 절대평가 전환 계기가 다뤄졌다. 또한 절대평가제도 ▲도입 이전의 우려와 ▲도입 이후의 성과도 보고됐다.

절대평가제도 시행 이전에는 해당 제도하에서 동기부여 부족으로 학업성취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했다. 하지만 의과대는 필수과목에 한해 학업성적 우수자에게 H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1년에 논패스를 받는 학생들은 1~2명에 불과한 상태다. 또 임상의학 종합평가 등 학내 성취도 평가에서 절대평가 제도로 평가받은 학생의 성적은 상대평가로 평가받은 학생에 비해 비슷하거나 올랐다. 절대평가제도 도입 이후 첫 졸업생들은 국가고시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국가고시 합격자 평균에 비해 15점가량 높은 301.2점을 받은 것이다.

한편, 우리대학교 의과대 졸업생이 인턴·전공의 선발 시 불이익을 당하리라는 우려도 있었다. 평량평균과 국가고시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절대평가 하에서는 평량평균이 산출되지 않는다. 이에 안신기 교수(의과대·의학교육)는 “본과 4학년 성적과 국가고시 성적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고시 성적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며 “교수들과 함께 작성한 포트폴리오도 학생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절대평가제도 도입은 교수법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의 변화로 이어졌다. 안 교수는 “이전에는 ‘교수들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의 학업 만족도도 크게 높아졌다. 발제 및 토론연설에서 학생대표 허성택(의학·13)씨는 “불필요하게 타인과 경쟁하기보다 서로 어려운 점을 도와주며 협력하게 됐다”며 “발전과 성취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상대평가로 대변되는 기존 의학교육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우리대학교 의과대는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교육과 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평가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도 바뀌지 않는다”며 “연세대는 상대평가제도의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절대평가제도 도입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양 교수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피드백과 수정을 통해 계속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일 우리신문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의과대학장 송시영 교수의 모습


아래는 절대평가제도 도입 배경과 영향에 대해 의과대학장 송시영 교수(의과대·내과학)와 진행한 인터뷰다.

Q. 절대평가제도 도입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A. 절대평가제도 도입 후 학생들이 좋은 국가고시 성적을 보이긴 했지만, 사실 궁극적인 목표가 높은 국가고시 성적은 아니다. 물론 국가고시 성적이 잘 나왔기에 절대평가제도를 반신반의하던 교수님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협업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보건의학분야에서는 협업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특히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그렇다. 가령 의약품을 개발하려면 약학대학과의 협업이, 의료 기구를 만들 때는 공과대학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상대평가제도 하에서 학생들은 줄 세우기 식 평가에 익숙해진다. 때로 동료를 경쟁상대로 간주하기도 한다. 절대평가제도는 경쟁보다 협력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Q. 다른 학교의 의과대에서도 우리대학교의 시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나?

A. 꽤 많은 대학이 절대평가 도입에 관심을 보인다. 다른 학교의 요청을 받아 우리대학교 교수가 세미나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각 과목별로 순차적으로 절대평가를 시도하려는 학교도 있고 전면적인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하려는 대학도 있다.

전국의 의과대학장들 사이에는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많은 의과대가 교육제도 변화의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 정부도 재정적 지원 등으로 화답해준다면 좋겠다.

 

Q. 학교 본부에서 절대평가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학교 본부 측도 절대평가에 대해 긍정적일 것이다. 의과대학은 특성상 점진적이기보다는 급진적인 제도적 전환이 필요했다. 모든 과목들 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과목별로 시기를 달리 해 절대평가를 도입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모든 과목에 동일하게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종합대학은 이와 다르다. 의과대보다 신중하게 점진적으로 평가제도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학과, 강의별로 절대평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절대평가 도입과 관련해 한 가지 점은 확실히 해야 한다. 목표가 단순히 평가제도 자체의 변화에 있어서는 안 된다. 제도 변화를 통해 어떤 학생들을 길러낼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글 문영훈 기자
bodo_ong@yonsei.ac.kr
서혜림 기자
rushncash@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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