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진 사진영상부장 (글행/생디·14)

#1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직업이든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수능 때까지 핸드폰이 없었던 내겐 신문과 방송의 힘이 그만큼 강력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세상을 바꿀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글을 쓰든 리포팅을 하든 기자가 돼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에 기자가 되는 것은 나의 꿈이 됐다.

#2

오랜 역사를 가진 연세춘추에 들어와 기자가 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반 학생으로서는 접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끝에 나의 꿈은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자에게 향한 사람들의 동경을 바랐던 것일까. 혹은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확신에 차 기자라고 대답하는 나 자신이 멋있다고 느껴서였을까.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싶어 ‘꿈’이라고 말해왔는지도 모른다.

#3

“함께 먹게 되어 영광입니다”

10년이 넘도록 부모님은 식전에 나와 동생에게 인사를 해주신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기에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부모님은 나에게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영어, 아버지는 사회. 부모님은 선생님이셨다. 모르는 영어 단어가 없을 것 같고, 여쭤보면 모든 정답을 얘기해 줄 것 같았던 그들이 그저 사회구조 속 지극히 평범한 개인으로 보였던 순간부터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어렴풋이 현실을 직시하게 된 그때, 나 또한 그저 작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새 ‘꿈’이라는 단어는 어릴 적 철없는 단어가 돼버렸다.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현실에서 꿈을 말하기란 초라했고, 또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 두려웠다.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작게만 느껴져 너무나 싫었다.

#4

도대체 내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더 나은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좋은 것이 좋다기보다 옳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외쳤지만,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5

어느덧 스물넷. 사회 초년생으로서 제일 막내인 나이라지만 졸업을 앞둔 나에게는 참 외롭고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두려움보단 도전이었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맞닥뜨린 세상에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화를 꿈꾸는 나 자신이 철없게만 느껴지며,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야 세상을 깨닫고 타협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나의 꿈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럴듯한 직업을 갖는 것으로 한정 짓고 싶지 않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며, 어떤 일이든 소신 있게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예쁘다. 누구보다도 예쁘고 빛나보인다. 나도 그런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넌 그저 현실과 타협한 거라고 자위하지 말라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스물넷 나의 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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