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여론칼럼 십계명
[십계명] 렌즈가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 바라보는 렌즈를 깨뜨릴 것
  • 이지훈 매거진부장
  • 승인 2018.05.12 17:04
  • 호수 1811
  • 댓글 0
이지훈 매거진부장
(언홍영·13)

커뮤니티 사이트인 ‘워마드’에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중 몰래 촬영된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이 올라왔다. 불법촬영 사진에서 남성의 성기뿐 아니라 얼굴마저 드러나며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워마드 회원들은 이 남성 모델을 대상으로 성적 희롱을 하며 2차 피해를 줬다. 이후 게시글이 논란이 되며 원본은 삭제됐지만 이미 게시글은 퍼진 후였고, 남성 모델은 상처를 받아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불법촬영 사건을 통해 필자가 취재했던 기사가 생각났다. 필자가 기자로 활동하던 지난 2017년 신촌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한창 불법촬영 범죄가 화두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던 시기였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불법촬영이 신촌 한복판에 도사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신촌 일대의 화장실을 조사했다. 화장실 벽면에 난 구멍이 화장지로 막혀있는 곳은 많았지만 다행히도 불법촬영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특히 우리나라 여성은 불법촬영의 파놉티콘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한다. 파놉티콘이란 ‘모두(pan) 본다(opticon)’는 뜻의 원형감옥이다. 중심에 위치한 감시탑에서는 외곽에 위치한 수용실을 볼 수 있지만, 수용자들은 감시탑이 어두운 탓에 감시자의 존재도 감시의 여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수용자들은 감시자가 없더라도 감시의 느낌을 받게 된다. 불법촬영의 파놉티콘에서는 감시자 대신 카메라 렌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를 쳐다보는지도 모르는 렌즈의 감시를 느끼며 산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감시탑의 렌즈인 불법촬영을 두려워하고 있다.

홍익대 불법촬영 사건은 이례적으로 남성이 파놉티콘의 감시자가 아닌 수용자가 된 사건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주목을 받으며 많은 사람의 댓글공방전이 일어났다.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수사 양상과 속도에 차이가 난다는 논란이 일었고 남녀 간의 갈등으로까지 그 논란이 확대됐다.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여성이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 수사가 빨리 이루어진 이번 사건에 가지는 의문은 합리적 의심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이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필자가 신촌 화장실의 불법촬영을 취재할 때 불법촬영을 찾지는 못했지만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모두 벽면에 구멍이 존재했지만 화장지로 구멍을 막아 놓은 곳은 여자 화장실뿐이었다. 화장지로 막힌 구멍을 보며 여성이 얼마나 불법촬영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상대적으로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낮은 남성이지만, 그래서 여성이 느끼는 불안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감시탑의 렌즈를 깨뜨리고 싶다. 더 이상 불법촬영의 파놉티콘에서 살기 싫다.

이지훈 매거진부장  chu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