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연 사회부장 (노문·16)

나는 ‘사수생’이었다. 재수생, 삼수생도 아닌 그 이름조차도 낯설기만 한 사수생 말이다. 노량진 밤거리를 하염없이 거닐던 그때의 나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등 뒤로 들려왔던 말.

 

“괜찮아. 그 노력의 시간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스물셋의 나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학업, 대인관계에 치여 한 치 앞도 안 보이다가도 문득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백양로라는 걸 상기하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사회에는 훨씬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 더 큰 성취를 얻은 사람도 넘쳐난다. 그들 모두 ‘축적’의 시간을 통해 저마다 값진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다.

 

축적, 그리고 그 무게

 

‘지식, 경험, 자금 따위를 모아서 쌓음’. 축적의 정의다. 무언가를 축적하기 위해선 지속성이 요구되며, 지속성은 노력이 수반돼야 가능하다. 공으로 얻은 축적이란 없으며 이는 각각의 축적이 묵직한 무게를 지니는 이유기도 하다.

축적이 지닌 힘은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깝게는 사회 각계의 민낯을 들춰낸 미투 운동부터 광화문을 환히 밝혔던 백만 촛불까지. 용기 있는 여성들의 고백이 이어져 사회 전체로 울려 퍼졌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염원은 평화의 상징인 촛불로 활활 타올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권력 위계를 이용해 성범죄를 일삼았던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은 사회적 형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 외신에 의해 ‘김치만큼이나 한국적’이라고 보도됐던 촛불 집회는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결코, 무게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묵직했던 것일까.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미투 폭로는 한 달여 만에 ‘성폭력 피해자’와 ‘꽃뱀’을 가리는 이분법식 논란으로 변질돼 버렸다. 잇따르는 폭로에 미투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펜스룰 또한 퍼졌다. 이는 여성을 배제시킨다는 논란과 함께 성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뜨거운 관심 속에 출범한 정부는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기도 했다.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 탓인지 아직은 그 귀추를 주목할 단계임에도 여론은 금세 달아올랐다.

 

다시금 되돌아보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했을 당시 그녀의 용기에 감명하며 보냈던 따뜻한 박수를. 그리고 추운 겨울 부모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온 어린아이가 들었던 촛불의 온기와 미소를. 그 박수에는 서 검사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려는 진정성이 녹아있었다. 또 지난했던 2년 전 겨울, 아이의 촛불 속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진정성 있는 연대가 담겨있었다.

이렇듯 진정성이 깃든 축적의 힘은 상당하다. 축적의 시간 동안 노력이 더해지면서 힘은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힘의 이면인 ‘묵직함’도 고려해야 한다. 축적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온전히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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