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본 에피소드는 현직 기자 6명의 수습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됐습니다. 


나는 수습기자다


04:00

이른 새벽, 비좁고 열악한 경찰서 기자 숙직실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사스마와리*를 도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으며, 비좁은 숙직실에서 여러 기자들과 뒤섞여 잠을 자니 피로가 풀릴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피로는 뒤로한 채, 다시 하리꼬미**를 시작한다. 1~2시간에 한 번씩 선배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무엇이든 알아오지 않으면 선배에게 또 욕을 먹을 것이다.


06:00

하루를 여는 첫 보고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사건을 알아내기 위해 숙직실에서 곧바로 경찰서 형사들에게 향한다.
“형사님, 오늘 일어난 사건 없나요? 저 ‘면피’***해야 되는데 혹시 새벽에 교통사고라도 있으면 좀”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안보여요? 방해하지 말고 나가요 좀”
스스로를 내려놓고 애걸복걸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시 뿐. 출입기자도 아닌 ‘일반인’ 신분의 수습들에게 사건을 친절히 알려줄 리 없다. 이유 없이 이리저리 치이는 일상의 반복이다.  


12:00

점심시간. 그러나 점심 역시 편하게 먹지 못한다. 점심시간에도 보고는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예 선배님”
“여보세요? 장난해? 다시 보고해”
“죄송합니다. 00라인 수습 000입니다. 제 라인 마와리 다 돌았는데, 특이사항 없는 것 같습니다.”
“뭐 이 XX야? 없는 것 같은 거야 없는 거야. 똑바로 말해. 경찰서는 일 안 해? 놀아? 이런 XXX야. 사건 알 때까지 마와리 계속 돌고, 아무것도 빼놓지 말고 알아와. 알아올 때까지 퇴근 없어”
오전 내내 돌았던 경찰서를 남은 시간동안 계속 돌게 생겼다.


15:00

“야 수습. 00씨 인터뷰 필요하니까 집 앞에서 그 사람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취재해와. 인터뷰 못 따면 알아서해” 
수습기자는 마와리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선배가 요구하는 보도와 관련한 크고 작은 취재도 함께 담당한다. 오늘은 00씨를 만나기 위해 00씨가 집에서 나올 때까지 무기한 ‘뻗대기’를 해야 한다. 수습의 취재는 대부분 기사에 실리지 못한다. 한동안 무기력하다 갑자기 취재를 못할 시 돌아올 욕이 떠올랐다. 취재할 의지가 솟아오른다.
 

▶▶ 지난 6월, 우리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일어난 ‘사제 폭탄 사건’ 당시 서대문경찰서에서 기자들이 ‘뻗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

20:00

‘뻗대기’를 하다 겨우 만난 00씨가 뜨거운 커피를 내 얼굴에 끼얹었다. 취재를 하다보면 가끔 겪는 일이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만두자’는 생각을 누르며 다시 내 마와리로 복귀한다. 수습이 된 이후 매일매일 경찰서로 출근하다보니 회사 편집국에는 발을 들이지도 못한지 오래다. 
마와리를 하루에 몇 번씩 왔다갔다 하다보면 회사에서 지원되는 취재비용으로는 역부족이다. 마와리를 돌 땐 늘 사비를 털기 마련이다. 
 

00:00

남들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시간. 이 곳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 눈뜨자마자 다시 보고할 것을 생각하니 편히 잠들 수 없다.
“기자는 말이야. 현장에서 발로 뛰어야 그게 기자인 거야. 너네가 이런 걸 거쳐야 비로소 올바른 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거라고. 지금은 수습 기간이 너무 짧지 않냐? 나 때는 말이야. 짧으면 6개월이었는데, 그러니까 너네가 지금 이렇게 해이해진거야.” 예전에 뵀던 대 선배 기자님께 들은 말이 떠오른다. 
수습이 끝나면 달라져 있을까. 버티다보면 기자로서 배우는 것이 있을까. 

 

▶▶ 많은 언론사들이 모여 있는 광화문 광장의 전경.

길 잃은 수습 교육, 배움은 홀로?
 

수습기자는 일주일 중 6일을 경찰서로 출근한다. 퇴근은 없으며, 매일매일 사건을 알아내려는 사투 속에 살아간다. 하루 2~3시간 밖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일상이 됐고 이러한 생활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오는 수습기자도 비일비재하다. 언론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수습기자는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약 6개월간의 사스마와리와 하리꼬미 과정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수습 교육의 부재 ▲지나친 권위주의적 구조를 몸소 느낀다. 그럼에도 수습 교육은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흔히 수습 교육의 과정으로 꼽히는 ‘사스마와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스마와리는 당시 일본 언론사에서 채용된 신입기자들을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사스마와리’를 통한 수습 교육은 지금까지도 짧은 시간 안에 핵심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취재하는 법과, 극한의 상황을 버텨내는 ‘기자 정신’을 교육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명목 하에 여전히 수습 교육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언론사 입사 27년차 기자 A씨는 “사스마와리가 가장 효율적인 수습 교육 방식이라는 입장에 동의한다”며 “기자는 직업 특성상 분명 현장에서 발로 뛰고 끈질긴 정신력을 발휘해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스마와리로 기자정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습 교육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에 대해 대부분의 기자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한다. 방송국 입사 1년차 기자 B씨는 “사스마와리가 신입 기자들을 교육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인지 의문이 든다”며 “6개월간의 수습 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취재와 기사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다 보니 매일 혼나며 처음부터 다시 깨우쳤다”고 전했다. B씨는 본인의 수습 시절을 돌이켜보며 “수습기자 시절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현장에 내던져진 느낌”이라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잠을 줄이고 정신을 단련하는 시간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B씨는 사스마와리 수행 이전, 취재 방법과 기사 작성에 대한 심층적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내던져진 현장에서 올바른 흐름을 보는 기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수습기자 옥죄는 상명하복
당연해진 권위주의

 

일각에서는 수습 교육 내의 하향식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다. 언론사에서는 지역 경찰서들을 몇 개씩 묶어 라인을 나눈다. 그리고 각 라인에는 한 명 이상의 기자들이 배정된다. 현장에선 이 기자들을 연차가 높은 순으로 ‘일진’, ‘이진’, ‘말진’ 등으로 일컫는다. 이 중 보통 경력 5~7년차로 가장 고참인 ‘일진’ 기자는 자신이 맡은 라인을 총괄하며 그 라인의 기자들이 가져온 정보를 모든 라인을 관리하는 ‘시경캡’에게 보고한다. 기자들이 자신의 라인에서 모은 정보를 선배 기자에게 보고하면, 그 정보가 다시 더 고참인 기자에게 올라가는 식이다. 이렇듯 연차 구분이 확실한 라인 내의 구조는 상명하복의 성격을 가진다. 이에 대해 기자 C씨는 “수습기자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선배들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상명하복 시스템이었다”고 답했다. 일례로 기사를 쓰는 데 필요 없는 사소한 정보까지 알아오라며 트집을 잡는 경우도 있다. 기자 B씨는 “예를 들어 담당 지역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면 구멍이 난 게 앞바퀴인지 뒷바퀴인지 알아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선배기자가 수습기자에게 지시를 내리며 다소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 D씨는 “아직도 몇몇 언론사들은 기자에게 지금 어디냐며 있는 곳의 사진을 당장 찍어 보내라는 등 혹독한 방식으로 수습 교육을 한다”고 전했다. 또한 기자 E씨는 “어떤 사람을 선배로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인격 모독은 여전히 수습들이 흔히 겪는 문제”라고 답했다.

또한 하향식 구조가 틀에 박힌 기자를 재생산한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기자 일을 배우는 수습기자 기간에 선배기자가 지시한 사항을 따르는 것에 급급할 뿐 개인의 적성이나 창의성을 일깨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방송국에 재직 중인 기자 E씨는 “혹독한 수습교육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부딪히며 자신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맹목적 교육보다 시각을 넓혀 사건의 흐름을 짚어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이봉수 원장은 “언론의 이런 도제식 교육은 각 언론사의 가치에 맞춰낸 기자들을 양산한다”며 “선배들의 강압적 지시에 따라가느라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시과정 중 비속어가 사용되는 등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더라도 사실상 수습기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를 견디거나 기자의 길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또한 기자들이 수습 교육 동안 권위주의적 구조에 익숙해지는 것이 기자들의 저널리즘 의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원장은 “인권의 차원에서도 저널리즘의 표준을 의식해야 할 기자들이 조직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첨언했다.
 

▶▶ 지난 6월, 우리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일어난 ‘사제 폭탄 사건’ 당시 기자들이 제1공학관을 찍고 있는 모습.

기간은 줄었지만,
교육 내용은 그대로

이처럼 많은 기자들이 수습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큰 개선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또한 수습 교육에 불만을 가졌던 기자가 막상 선배 기자가 됐을 때 자신이 겪었던 부조리함을 답습하기도 한다. 이에 기자 C씨는 “돌이켜보면 나 역시 후배기자들에게 선배들의 권위주의를 답습했다”며 “언론사 특유의 도제식 교육 시스템 속에서 악순환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습교육가 직면한 문제점이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 수습 기간을 줄이는 등의 시도가 언론사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을 교육시킨답시고 경찰서로 우선 ‘마와리’를 돌리는 구조 자체에 대한 큰 변화가 있다고 말할 순 없다. 기자 E씨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도록 몰아붙이고 출입처에만 목매는 취재 관행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초점을 잃은 취재 방식으로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기사가 나올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또한 방송국 입사 4년차 기자 F씨는 “수습교육에 있어 맹목적인 교육보단 매뉴얼을 마련해 기자들을 훈련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수습기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냐는 질문에 기자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놨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했을 때, 수습기자 시절을 끝내고 바이라인****을 달았을 때 등…. 찰나의 순간에서 느끼는 보람으로 기자들은 각자의 힘든 수습 교육기간을 버텼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수습교육에서 답습되는 부조리함까지 지워주지는 않는다. 현재의 수습 교육이 과연 ‘좋은 기자’를 길러낼 수 있는가. 사람들은 ‘기레기’가 아닌 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스마와리: ‘경찰서를 돌아다닌다’는 말의 일본어로, 수습기자가 같아 맡은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사건을 챙긴다는 의미의 속어
**하리꼬미: 사스마와리 안에 포함되는 하나의 방법으로, 경찰서 안에 합숙하면서 온종일 사건을 챙기는 것
***면피: ‘첫 보고를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사소한 사건들’을 일컫는 수습기자들의 말
****바이라인: 기사 끝에 기자의 이름을 기재하는 것
 

글 이지은 기자
i_bodo_u@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서한샘 기자
the_saem@yonsei.ac.kr
그림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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