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속 고현정의 독백이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짜증만 내는 우리. 자식들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보기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씁쓸한 공감을 산다. '보기 좋은' 허구보다 '보기 불편한' 현실을 써 내려가는 작가가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의 드라마로 완전한 누군가가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를 이야기하는 노희경 작가를 취재해봤다.

칭찬 한마디, 지금의 노희경을 만들다

 

장장 22년에 걸친 그녀의 작가 인생은 초등학생 때 들은 칭찬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노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아름다운 우리말과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글을 써서 칭찬을 처음 받아 보았고 그 칭찬이 작가의 꿈을 꾸게 했다고 회상했다. 노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때의 칭찬이 처음 받아본 칭찬이었다”며 “처음 받아본 칭찬이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노 작가는 고등학교 때도 문예반에서 활동하고 대학에서는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그러나 현재의 위상에 비해 작가를 위한 길이 처음부터 밝지는 않았다. 노 작가는 “대학생 시절 글을 못 쓴다는 평가와 게으름 때문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노 작가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노 작가는 이를 “어머니께 특혜를 받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을 하지 않고, 늦잠을 자도 ‘작가는 그래도 괜찮다’며 아무 말 않으셨다”고 노 작가는 회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믿던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노 작가가 처음부터 드라마를 썼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처음 칭찬을 받았던, 초등학생 때의 글은 계몽글*이었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시와 수필을 썼다. 노 작가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드라마를 저급하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며 “그러나 그런 풍조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라마가 강압적인 부분 없이 있는 그대로, 위안이 되는 글이기 때문에 재밌었다”고 말했다. 노 작가는 그렇게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밥값’ 하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

 

드라마 쓰는 일이 즐겁다는 노 작가에게도 작가 생활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편견이나 시청률, 현실적인 금전문제는 항상 따라오는 문제였다. 노 작가는 “드라마 작가가 가진 재능도 중요하지만 드라마 제작도 분명 상업적 행위이기 때문에 금전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 작가가 말하는 ‘밥값’이 단지 돈을 버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 작가는 자신에게 ‘밥값’이란 “내가 풀어낸 얘기에 담긴 가치와 이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래서 노 작가는 많은 어려움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금전적인 부분과 직결되는 시청률보다 자기만족이라고 술회했다. 노 작가는 “시청률이 비교적 높지 않아도 ‘밥값’을 하고 있느냐는 노희경이 추구하는 가치에 사람들이 거는 기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 표절을 한 부분이 보이거나 자신의 일하는 태도가 성실하지 못할 때, 일하는 파트너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제일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신경 쓸 것이 많아 힘들 수 있는 직업이지만 그녀는 “작가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며 “다른 일에 비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작가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노 작가는 다음 생에는 블루칼라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노 작가는 “때로는 작가라는 직업이 글만 쓰는 일인 것 같아 사회에 미안할 때가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다음 생에는 농사를 잘 짓는 농부나 기계를 잘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많은 시청자들은 노희경표 드라마의 매력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꼽는다. 이는 ‘드라마는 사람을 탐구하는 일’이라는 노 작가의 소신과 관련이 깊다. 노 작가는 “사람에게는 착한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는데도 로봇처럼 일차원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관찰을 통해 사람을 탐구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또한 노 작가는 『디어 마이 프렌즈』, 『괜찮아 사랑이야』 등의 작품들을 예시로 들며 “다른 작가들과 다른 관점에서 내 스타일로 대상을 보는 것일 뿐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는 겸손한 답변을 이어갔다.

노 작가는 캐릭터를 만듦에 있어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노 작가는 “20대와 얘기를 하지 않으면 20대의 얘기를 담을 수 없다”며 “모르는 얘기들은 끊임없이 듣고 소통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라고 밝혔다.

그녀의 이러한 성격은 드라마 연출에서도 나타난다. 노 작가는 “대본 집필 시 감독들은 나의 보조 작가가 되고, 연출 시 나는 조감독이 된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역할만 있을 뿐, 계급은 없다”고 말했다. 또 노 작가는 “배우든, 감독이든, 작가든 누구나 평등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출에 관여해 감독과 마찰을 빚은 적은 없냐는 질문에 노 작가는 “의견 다툼이 있어도 사이가 틀어진 적은 없다”며 “좋은 드라마라는 동일한 지향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렇듯 자신의 색깔이 강한 그녀지만 자신의 작품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도 노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이다. 자신의 작품에 자신만의 색깔이 있듯이 다른 작가의 작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노 작가는 “노희경다운 드라마, 막장 드라마, 또 어떤 드라마,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게 민주주의고, 이러한 다양성이 한국 드라마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얘기했다. 또한 “한국 드라마가 노희경다운 드라마밖에 없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냐”고 덧붙이며 소탈하게 웃었다.

 

스무 살, 서툰 것이 좋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청춘의 회복 탄력성을 강조하는 사회 풍조와는 달리 노 작가는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바보 같은 소리“라고 한다.

노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는 이십대가 아니라 안정적으로 직장에 자리 잡은 삼십대를 넘긴 후”라며 “오히려 이십대는 서툴기 때문에 괴롭고 힘들었던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 작가는 “서툰 것이 좋다”고 말했다. 노 작가는 “열정은 있는데 뭔가 서툴러서 삐걱거리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고 말하며 20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는 노 작가의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에도 녹아 있다. 작중 새내기 감독인 주준영(송혜교 분)은 상처받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드라마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좌절하고 방황한다. 이에 대해 노 작가는 “20대의 실수는 성숙해지는 연습일 뿐, 좌절은 아니다”고 20대를 위로했다. 이어서 “아픔이 있는 것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라며 20대의 아픔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 작가는 20대와 기성세대 간의 소통 단절을 걱정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박완(고현정 분)과 조희자(김혜자 분)의 갈등에서 드러나듯이, 부모님 세대를 마냥 ‘꼰대’라고만 생각하면서 부모님 세대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것이 노 작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었다. 노 작가는 “내 어머니도 못 배운 사람이었지만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며 회상했다. 이어서 “그래서 내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세대를 섞는다”라고 말했다. 노 작가는 서로 이야기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얘기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어른들이 청년들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그들과 소통하려 한다”며 20대와 기성세대 간의 소통을 소망했다.

 

막연한 스토리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관찰과 조언이 오간다.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드라마를 위해 매일 글을 쓰고 관찰하는 노 작가로 인해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공감을 얻는다. 노 작가는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현대사회의 색다른 단면이 담긴 노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기를 기대해 본다.

 

*계몽글 : 계몽을 위한 공익적 주제의 글

 

글 안효근 수습기자

윤현지 수습기자

이가을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사진출처 노희경 작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