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자보 게시 이후 연대 서명·총여 입장문 이어져… 학내문화 실질적인 변화 요구돼

▶▶ 중앙도서관 앞에서 대자보를 읽고 있는 우리대학교 학생들.

지난 7일, 특정 학과 단톡방 내 성폭력을 고발한 대자보가 학내에 게시됐다. 이는 지난 2016년 9월, 이과대 단톡방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지 불과 6개월만이다. 
자보에 따르면, 지난 2013년 3월 2일부터 2016년 12월까지 해당 학과 단톡방에서는 ▲외모‧몸매 품평 ▲성(性)적인 별명 ▲여성의 성적 대상화 ▲피해여학생 이름으로 성적인 삼행시 짓기 등의 발언이 이뤄져 왔다. 또한 자보에 따르면, 해당 단톡방이 SNS에 폭로되는 과정에서 가해자 측이 내부고발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등의 협박 발언을 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해당 자보를 올린 게시자 측은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16년 12월 사건이 드러난 뒤 가해자 측이 내부고발자를 협박하고 성평등센터에 항의전화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공론화를 결심하게 됐다”며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다른 집단도 변화해야 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자보를 게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게시자 측은 “13학번 남학생 지인이 ‘자보의 내용에 왜곡이 있다’고 말하는 등 자보가 게시된 이후에도 학과 내에서의 가해와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자보가 게시된 이후, 지난 9일에는 ‘12학번 어느 여학생 1’, ‘12학번 어느 여학생 2’가 쓴 자보가 게시됐다. 두 자보 모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과의 지배적인 분위기가 ‘여성혐오적’이라는 점 ▲이러한 분위기를 방조하는 것도 가해라는 점을 강력히 비판하며 주요발언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지난 10일, 총여학생회(아래 총여)는 해당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중앙도서관 ▲외솔관 ▲위당관 등에 게시했다. 총여는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출 것 ▲학교본부는 부족한 상담인력을 충원할 것 ▲언론은 ‘특정 학과 부각’ 등 논점을 흐리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해당 단톡방 성폭력 사건은 현재 성평등센터에 접수된 상태다. 성평등센터 최지나 직원은 “당사자 이외에 사건 처리 경과를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현재 성평등센터에서 사건을 인지했으며 처리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자 많은 학생은 분노를 표출했다. 사학과 16학번 노모씨는 “여성들을 왜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여성을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하는 문화와 의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노씨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학사회에 만연해 있는 
단톡방 성폭력 문제…
윤리의식과 문화의 개선 필요해

 

대학가의 단톡방 성폭력 문제는 비단 우리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14년 국민대에서 발생한 단톡방 성폭력 사건에 이어 2016년 고려대와 서울대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관련기사 1776호 2면 ‘총여 단체채팅방 성희롱 내용 공개… 입장 발표는 8일로 예정’> 이에 이나진(문화인류·15)씨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단톡방이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학생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대학교 신촌캠 학생복지처장 육동원 교수(교과대·스포츠심리학)는 학생들의 윤리의식이 카카오톡과 같은 SNS 매체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육 교수는 “평소 생활 속에서나 SNS 이용 시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성적인 농담들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가해자들이 단톡방 내의 성희롱을 자신들만의 놀이문화로 여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신혜정씨는 “일부 남성들이 자신의 관계 유지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가해자들은 단톡방을 통해 주로 여성의 사진을 찍어 올린다거나 여성을 품평함으로써 서로 간의 유대감을 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씨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의 경우, 카톡이라는 형식으로 인해 드러났을 뿐이지 이와 유사한 성희롱은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고려대에서는 ‘여학생 몰카 사건’이 논란이 된 바 있고,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장이 외모 비하 등의 성희롱 발언으로 자진사퇴한 바 있다. 이어 신씨는 “단톡방 사건 자체에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우리사회의 남성문화가 어떻게 구성됐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심선언으로 밝혀진 단톡방 사건, 
내부 고발자의 ‘폭로 이후 안전망’ 마련돼야

 

과거에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최근 들어 내부 고발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성희롱에 대한 인식 변화의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16년 9월 이과대 단톡방을 내부 고발했던 A씨는 자보에서 ‘처음에는 성범죄 등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일인 줄 알았다’며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성폭력적 언행들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이러한 언행들에 대해 늘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성평등센터 최지나 직원은 “과거에는 가볍게만 생각했던 단톡방 내 성희롱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내부 고발이 나타나는 이유도 학생들의 인식 변화의 결과”라고 전했다. 

그러나 내부 고발자의 폭로 이후, 2차 가해를 막을 만한 마땅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가해자에게 협박을 당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총여학생회장 마태영(신학·14)씨는 “지난 2016년에 연속적으로 발생한 단톡방 사건에서도 공론화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이나 내부 고발자들이 가해자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며 “내부 고발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학내 구성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씨는 “앞으로 학내 성폭력 사건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사건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도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리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은 단톡방 성폭력 문화.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자발적인 성찰과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노원일 기자
bodobono11@yonsei.ac.kr 
  오서영 기자 
my_daughter@yonsei.ac.kr
전예현 기자
john_yeah@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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