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학생사회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운명에 놓였다. 학생회 입후보 등록 기간 동안 총학생회에 어떤 선본도 나오지 않아 선거가 무산됐다. 총동아리연합회, 문과대 등 입후보 선본 부재로 비상대책위원회 운영이 불가피한 단위도 최근 몇 년 새 가장 많았다. 학생사회의 위기가 해를 거듭하며 선명해지고 있다. 특히 1961년 총학생회가 출범한 이후 출마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된 것은 처음이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일이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왔던 대학 학생회의 위상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요즘 대학가에선 투표율이 과반을 넘지 못해 선거 기간을 연장하고, 투표장에 나온 학생에게는 간식 등을 제공하겠다며 투표를 독려하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대학교 학생회가 겪는 재정난 또한 학생들의 자율경비 납부율이 저하가 원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적 냉소주의나 무관심이 증가한 탓도 크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취업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학생들은 활발한 학내 정치 참여에서 자연스레 멀어지고 있다.

운동권, 투쟁하는 학생회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나며 학생회 자체의 성격도 많이 변했다. 지난 5월 우리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회가 사회적 이슈에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51%의 학생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학내 복지에 중점을 두는 학생회가 당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학생회와는 별개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단체에서 크고 작은 사회 이슈에 주도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단위에서 학생 대표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전 학생회에게 섣불리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에 정치력 약화가 겹치면서, 철학이나 가치를 가진 학생회라도 이를 실현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활동 환경도 열악하다. 학생회를 거쳐 가는 이들도 결국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학생들이다. 사명감이나 의무감, 희생정신만으로는 학생 대표자로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목소리를 내고 싸우지 않아도 될 만큼 학생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학생 자치가 실현됐다면 학생회는 사라져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국은 학생들을 연결하고 대변하는 학생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얼마 전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특례 의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벌어진 데 대해 대학은 선두에 서서 선언문을 발표하고 광장에 나섰다. 장애 학우나 성소수자 등 그동안 학내에서 숨어 지내온 이들이 겪는 문제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90년대부터 제기돼온 교육권, 등록금 의제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출마 선본이 없어 비대위로 운영되는 학생회는 대표성이 떨어지고, 기조나 공약이 없어 최소한의 업무만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학교 본부를 견제하는 기능 수행도,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학생회가 학생 자치 실현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중요하며, 학교 본부의 재정지원 확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학우들의 뜻을 모아 대변하는 학생회의 힘은 언제까지나 학생에 의해 부여된 권력으로부터 발휘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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