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 및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에 출연금을 강요하고 각종 재단을 설립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지난 10월의 한 언론보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부터 각종 외교·경제 문건, 청와대를 비롯한 공직사회 인사개입까지, 최씨가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정황이 여러 매체를 통해 연달아 폭로됐다.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과 청와대는 물론 여권의 묵인 하에 국정 전반이 일개 민간인에 의해 좌지우지돼왔다는 사실은 헌법에 기초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치적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 동안 “소신과 원칙”의 정치를 강조했던 대통령이 사실상 책임회피와 거짓말로 국정을 농단하거나 묵인해 왔음을 깨달은 국민들은 극도의 불신과 실망감에 분노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대통령의 지지율은 5%로 폭락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국 각지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와 함께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이 연이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국정에서 물러나 여야가 합의하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는 책임총리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에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파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독선적 개각 단행과 더불어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된 그의 담화는 결국 광화문 광장을 성난 민심의 촛불로 가득 메우게 만들었다.


이번 국정농단 파문을 파헤친 데는 JTBC는 물론 <한겨레>, TV 조선 등 언론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이들 언론의 연이은 폭로와 증거제시로 의혹을 부인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관련자들이 하나둘씩 수사에 응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고,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없다”던 검찰도 이제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전례 없는 현직 대통력에 대한 수사와 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배심원’은 정치권도, 언론도, 검찰도 아닌 추운 날씨에 촛불을 들고 성난 민심을 표출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다. 민주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염원을 밝히고 있는 ‘촛불’들이야말로 대통령은 물론 이번 사태를 묵인하고, 간과하며, 회피하려 했던 정치권력, 사법권력, 그리고 경제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처벌을 위한 마지막 심판자로서의 명분을 가지기 때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고질적 병이 재발한 환자와 같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경유착, 권력의 사유화, 부정축재 등 과거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노출됐던 암적 병폐가 현재 우리사회에 재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 죽어가는 대한민국은 촛불을 든 국민의 손에 생사가 달려 있다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때마다 4.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 등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는 민초들의 저항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불거졌던 정권의 불통과 독선에 더해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드러난 지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민의를 배신하고 기만적 태도와 무능력으로 일관한 권력의 ‘대리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더 이상 지도자로서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으로 또다시 절망감을 느낀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정을 거두고 진실규명을 위한 엄정한 수사와 책임규명을 정치 및 사법권에 촉구하고 준엄하게 감시하여 치욕스럽게 붕괴된 국가의 기강은 물론 국운의 불씨를 되살려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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